도통 (종통)

도통(道統)(종통)

구천상제님의 뜻을 태극도주님께서 어떻게 이어셨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과거 불법이 전해질 때 혜가 스님은 달마대사의 가사와 바리때를 물려 받는 것처럼, 도통이 전수될 때 현실에 보이는 물건이 전해지는 것으로도 도통의 계승을 확인 해 볼 수 있습니다.
도주님께서는 구천상제님의 천명(天命), 천서(天書)와 천보(天寶) 삼천(三天)을 받드셨습니다.
구천상제님과 태극도주님이신 옥황상제님께서는 한 번도 직접 만나시지 않았지만, 구천상제님께서 9년 천지공사를 이어서 광구천하하실 분을 여러 차례 암시하셨습니다. 1909년 화천 하시기 전, 누이동생에게 본소에서 을미생이 올 때를 기다리고, 그 을미생이 도통을 이을 진인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천하시기 2개월 전에는 직접 대전역 근처로 가셔서 태극도주님께서 만주로 가시는 도중에 도통(道統)을 계승하실 분임을 계시로서 밝히셨습니다. 이러한 도통(道統)은 1917년 4월 28일 봉천명 치성을 올리신 후 구천상제님으로 부터 환국하여 본소를 찾으시라는 계시 속에서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또한, 도통(道統) 계승자로서 갖추어야할 부분에 대해서도 계시로 말씀하셨으며 이것이 바로 본소(本所)를 찾고 삼천(三天)을 받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 삼천은 천명(天命), 천서(天書)와 천보(天寶)입니다.
부연 설명을 드리면, 천명은 구천상제님의 도통을 이어받아 광구삼계하라는 천명이며
천서(天書)는 현무경으로 후천선경을 열기 위해 행해야 할 도수가 수록된 책이며
천보(天寶)는 구천상제님께서 도지와 도통을 상징하는 둔궤입니다.
특히, 구천상제님께서는 이 둔괘의 여러 상징적인 내용들이 바로 도지와 도통의 뜻이 있다고 하셨으므로 이를 중심으로 정리하였습니다.

1) 천명(天命)

구천상제님께서 1909년 4월 28일에 영적계시로 "그대가 나의 도통을 이어 치천하도수로 무극대운의 대공사를 성취하되 내 명교를 받들어 태극의 진법을 용 하면 무위이화로 광구삼계하리라. 그대의 호는 정산이니 나와 그대는 증정지간(甑鼎之間)이며 이도일체니라. 나는 구천의 천존상제로라.』 하시니라 이해 6월 24일 구천상제님께서는 삼계공사를 종필(終筆)하시고 전북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 동곡약방에서 화천(化天)하셨습니다.

2) 천서(天書)

구천상제님의 여동생인 선덕부인께서 구천상제님의 명으로 본소에서 을미생을 기다리시던 중 박모와 송모가 본소에서 1916년부터 공부하기를 간청하여 1919년 1월까지 공부하면서 천서인 현무경과 주문서를 내어주었습니다. 이로써 몹시 난처한 상황에서 옥황상제님과 1919년 1월20일에 상봉하시게 됩니다.
태극도주님이신 옥황상제님께서 대모님과 고모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무 심려 마옵소서. 상제님의 진품증표(眞品證票)는 반드시 진주인 나에게 전수될 것을 굳게 믿고 있나이다.” 하시니라. 옥황상제님께서 생각하시기를 “증산상제님의 본소가 이곳이라면 도통의 증표도 이곳에 있으리라.” 확신하시고 증산상제님께서 친히 도배하신 벽과 천정을 유심히 살피시는데, 시선이 앉으신 바로 뒷벽의 천정 아래에 닿으시자 형언할 수 없는 영감 속에 한 곳이 섬광으로 번쩍이므로 일어나셔서 그곳을 두드리시니 비어 있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를 보신 고모님께서 도배를 뜯으시고 호미로 벽을 파시니 과연 그 속에 목함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상제님께서 그 함 문을 여시니, 안에서 전광이 발산하고 가대(家垈)와 벽이 진동하였으며 “천서(天書)"인 현무경과 주문서가 비장되어 있었습니다.
도주님께서 천서를 찾으시고 권씨 대모께 올리셨고 대모께서 이 글은 구천상제님의 친필 이심을 확인 후 ‘그 상제에 그 진주로다’라는 말씀과 함께 그 천서를 비단보자기에 싸서 도주님께 드리셨습니다. 옛날 황실에서도 황제가 후사를 정하지 않고 붕어 하시면, 대비전에서 후대를 정하는 예법이 있습니다. 이 또한 황실의 예법에 맞게 도주님께서 구천상제님의 도를 이으신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로써 삼천 중 두 번째 증표인 천서를 받들게 되었습니다.

3) 천보(天寶)

천보는 구천상제님께서 도통의 증표로서 말씀하신 삼천 중의 하나로서 둔궤를 말합니다. 구천상제님께서 도통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신 정의에 대해서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둔궤 안에는 "오강록(烏江錄)" "설문(舌門)" "반구제수(半口齊水)" "천문지리 풍운조화" "팔문둔갑 지혜용력" 등의 글을 쓰시고 글자마다 화각하신 다음, 내부 정면의 문자 주위에 24점을 주사(朱砂)로 돌려 찍으시며 "이 궤는 나의 도지(道旨)와 도통(道統)을 숨겼으므로 "둔궤(遁櫃)"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도지와 도통은 이 둔궤의 내용에 부합하게 무위이화(無爲而化)로 자연스럽게 일이 이루어짐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① 오강록 : 도지와 도통(종통)이 오강록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셨으며 1956년 도주님이신 옥황상제님께서 (태극 7장 90절) “ 증산 상제님께서는 “단주해원”을 위수(위수)로 하셨고, 나는 “초패왕해원”을 위수로 하느니라” 하셨으므로 도주님께서 구천상제님의 오강록을 도수로서 행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② 설문(舌門) : 설은 혀, 말, 언어를 뜻하므로 설문은 글자대로 해석하면 말하는 문 즉, 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문은 우리의 도통이 글자나 문자가 아니라 마음의 소리인 말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마음의 심법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③ 반구제수(半口齊水) : 한자의 파자에 대한 비결로서 풀어보면 도주님이신 옥황상제님의 어휘이신 철제(哲濟)를 의미합니다. 반은 반을 접는 것으로서 절이고 구는 그대로 사용하면 어휘의 첫글자인 철이 됩니다. 또한 제수(齊水)를 한 글자로 합하면 제(濟)자가 됩니다.

④ 양피와 24점 : 양피는 미생(未生)을 뜻하며 24점은 사철 혹은 강세하시는 시기가 24년임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금산사의 33척 금불(임진왜란소실) → 36척 목불 (1934년 화재) → 39척 토불(1938년 재조성)로 변천된 것을 보더라도 도맥은 오행의 이치를 내포하고 있고 도의 흐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⑤ 삼천의 주요 내용 외에 삼천과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양위 상제님에 대해 요약하면 아래표와 같습니다.

탄강 연도 도통 계승 갑자년 오행의 이치 강세일 (음력) 화천일 (음력)
구천상제님 1871 증산(甑山)
(시루)
신미생 금토 9월 19일
(술)
6월 24일
(미)
옥황상제님 1895 정산(鼎山)
(솥)
을미생 목토 12월 4일
(축)
3월 6일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