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위상제
- 옥황상제님 50년 공부종필 역사
신앙의 대상 : 兩位上帝(양위상제)
①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
구천상제님께서 1871년(신미년) 음력 9월 19일,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현재의 전라북도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에 강세하시니 성은 강(姜), 본관은 진주(晉洲), 어휘는 일순(一淳), 어자는 사옥(士玉), 어호는 증산(甑山)이십니다. 상제님의 신격위(神格位)는 "무극주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无極主九天應元雷聲譜化天尊上帝)" 이시고, 인격위(人格位)는 "강성증산상제(姜聖甑山上帝)"이시니, 삼계의 최고위이신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이십니다.
우주에서 가장 높은 주신으로 원시의 신성, 불, 보살과 선천의 모든 군생만물의 하소연에 응하시여 이 세상에 내려오시고, 삼계를 크게 돌아보셔서 큰 공사를 설계하시고 신명계를 새롭게 정하셨습니다. 삼계의 모든 군생만물을 구제하시기 위해 수천 년 간 쌓이고 쌓인 원한과 억울함을 형태와 흔적도 없이 해원할 수 있도록 천지공사를 9년동안 하셨습니다. 위대하고 지극하고 성대하신 구천상제님께서는 40년 간 인간계에서 기나긴 고행을 마치시고 1909년 음력 6월24일 인세 39세로 화천하셨습니다.
② 태극도주옥황조성상제 (太極道主玉皇趙聖上帝)
옥황상제님께서 1895년(을미년) 음력 12월 4일, 경상도 칠원현 서면 회문리 현재의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에 강세하시니, 성은 조(趙), 본관은 함안(咸安),
어휘는 철제(哲濟), 어자는 정보(定普), 어호는 정산(鼎山)이십니다. 상제님의 신격위는 "태극주옥황상제(太極主玉皇上帝)"이시고, 인격위는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
태극도주 조성정산상제(无極神 大道德 奉天命 奉神敎 太極道主 趙聖鼎山上帝)"이시니, 삼계의 최고위이시고 태극도의 주인이신 태극도주 옥황조성상제님으로서
구천상제님과 이도일체(以道一體)이십니다.
도주님께서 1909년 4월 28일 독립운동을 하시기 위해 가족들과 만주로 망명하시는 도중에, 대전역 부근에서 구천상제님으로부터 도통전수(道統傳受)와 널리 세상을
구하라는 천명과 신교를 받드시고, 몸소 옥황상제이심을 대오(大悟), 자각(自覺)하셨습니다.
도주님께서는 봉천명(奉天命)을 하시고 50년 공부의 기나긴 고행을 시작하셨습니다.
중국에서 9년동안 공부를 하신 끝에 1917년 윤2월 10일에 득도(得道)하심으로써 도통(道統)을 계승(繼承)하셨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본소를, 1919년 1월 20일에 도주님께서 찾으시고, 그곳에서 천서(天書:현무경,주문서)를 받드셨습니다.
1920년 9월19일에는 천보(天寶)인 둔궤(遁櫃)를 받드시고 공부하셔서 다음 해 양력 4월 5일 잠겨 있던 둔궤의 문을 스스로 열리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구천상제님께서 명하신 삼천(천명·천서·천보)을 완비하셨습니다.
구천상제님의 9년 천지공사를 이어서 삼계를 널리 구하시고자 50년 동안 남 모르는 공부로 무극도(1921년)에 이어 태극도(1948년)를 창도 하시고 진법 공부법방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1957년 우주 간에 유일무이한 진리의 성전인 대강전을 완성하셨습니다. 또한 시학, 시법 등 수도 전반의 공부 법방을 완성하심으로써 50년 공부를
마치신 후 1958년 3월 6일 화천(化天)하셨습니다.
- 1. 봉천명
- 2. 무극도
- 3. 잠룡도수
- 4. 태극도
- 5. 50년 공부종필
- 6. 도주님 유명
봉천명 정진주 도수 득도과정 (1909~ 1917) 9년
1. 1905년 11세 때 취당공 할아버지께서 유언하심 남 모르는 공부와 남 잘되게 하는 공부로써 일세의 사표가 되라 하심
2. 1907년 13세때 남모르는 공부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하심.
3. 1909년 15세에 만주로 망명하실때 대전 부근에서 구천상제님으로 부터 계시를 받으심 “내 그대를 기다린지 오래노라. 그대는 삼계의 진주니 ….
그대의 호는 정산이니 나와 그대는 증정지간이며 이도일체니라. 나는 구천의 천존상제로다.” 봉천명을 하시고 몸소 태극진주임을 대오 자각 하심.
4. 1909년 만주 수둔구 공부
5. 1909년 만주 노고산 2년간 두문 불출 공부
6. 1911년 숭도 부인과 성혼
7. 1912년 대중화 도수 공부 결심하시고 산동지방 태산 공자묘, 남경 상해 성도 장안 하남 고현의 노자묘 소림사 산서 운성의 관왕묘를 6개월 동안 관찰하시고 노고산에서 공부
8. 1917년 잠시 본댁에 환어하셔서 2개월간 공부
9. 1917년 원조에 강동지방 절강성 회계 초패왕 고향에서 ‘이제 나의 도수에 따른 그대의 대중화보은공사가 끝났으니 본가로 돌아가 나의 명교에 따라 의식을 거행하라 이는 곧 득도이니라고’ 계시를 받으심
10. 1917년 윤2월6일 새벽에 공부하시던 중 계시를 받으시고 이에 따른 득도 치성을 10일날 올리심
11. 1917년 노고산에서 길룡과 매씨를 거느리시고 공부하던 중 7일 만에 길룡이 개안하였으나 본국으로 돌아오는 신의주 철교에서 개안을 거두심
12. 1917년 4월28일 봉천명 치성후 본소를 찾고 삼천 중 천서와 천보를 받드심
13. 1917년 노고산 9년 공부 마치시고 본국으로 오실때 노고산 관왕묘 참예하심. 관성제군의 수염 사라졌다가 나타나게 하심
14. 1917년 안면도 정당리 어락곡의 주택을 매수하여 우일재라 명명하심. 본소는 다음에 찾고 서해의 제일 큰 섬에서 공부하며 기다리라 하심
무극도(구천상제님 임어) 창도 도수 (1918 ~ 1935) 18년
1. 1918년 우일재에서 공부하던 중 7일이 되던 날 박봉운이 개안하여 옥황상제님을 뵈었노라고 하고 같이 공부하던 이상우등 일동이 같이 사배를 올림.
상제님께서 “천기니라. 수구여병하라” 하심
2. 1918년 정읍군 감곡면 계룡리 황새마을에서 공부하시더니 초패왕의 원척을 풀었노라 하심
3. 1919년 본소가 눈앞에 다가 왔다고 계시하시며 이는 삼년 동안 일념이 도수와 부합한 결과라고 하심 선덕부인을 만나 본소인 북면 화해리 마동 본소를 찾으심
4. 1919년 본소의 벽에서 현무경과 주문서인 천서를 모심
5. 1919년 본소 백일 공부 후 청도리 구성산 학선암에서 백일 공부
6. 1919년 감곡면 통사동에 영모재 공부처를 마련하심
==> 진주의 기본 요건인 삼천중 천명과 천서는 모셨고 나머지 천보는 보천교에 있어서 증산상제님 강세 치성날 천보인 둔궤를 모셔오심
7. 통사동에서 둔궤도수 공부를 한달 하심
8. 1919년 대산면 용화산 반구정에서 백일 공부를 낮에 하시고 밤에는 검무 공부를 하심
9.
1920년 음력 2월 17일 양력 4월5일 절후치성을 올리신 후, 둔궤 앞에 따로 법수를 상에 차려 올리시고 분향 사배하시고 주대를 열쇠구멍에 넣자 뇌성벽력이 일어나며
자물쇠가 스스로 열림 ==> 후에 조주일 이 둔궤를 훔침
10. 1920년 쇠섬(철도) 안면도 창기리에서 단도수 공부, 박영효의 집에서 1921년 까지 설과 보름에도 단도수 공부, 백일 공부를 마치심.
11. 1921년 변산반도 해창포 우금바위 아래의 최석래 집에서 낮에는 공부를 하시고 밤에는 단도수와 검무도수를 하심
12. 1921년 4월 중순에 통사동 공부처로 돌아오시고 스스로 무극대도주의 권명을 천하에 고하노라 하시니라
13. 1921년 도주님의 위격으로 도인들의 하례를 받으시고 다시 백일공부하심
14. 1921년 8월 중순 통사동 백일 공부 후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 김사일의 집에서 10여일 간 도수를 보심
15. 1921년 9월 5일 통사동 공부실에 증산상제님 성골을 모셔오고 공부실 상좌에 봉안하신 다음 대치성을 올리시니라. 조석상식과 삭망절사를 상례절차에 준하여 9회의
삭망을 봉사하여 재세시에 옥체를 직접 봉성하지 못하였으므로 이와 같이 하여 천의를 받드는 삭망도수를 하심. 성체를 모신 공부실에서 백일공부를 12월 중순까지 행하심
16. 1921년 태인도장 영건을 위해 도인들이 자원하여 3만원의 성금이 원납되어 이를 원납도수라 일컬음.
17. 1921년 도주님께서 집안의 독자로서 자녀가 없어 숭정부인과 재혼하심
18. 1921년 삭망도수 공부 중 9월 19일 강세치성 후 하교하시기를 “나의 도통은 요순의 상수지법과 같으니라” 하심.
19. 1922년 원조에 현무 음해도수가 있으리라고 하신 후 폭도들로 인해 고생하심 그 뒤 만주에서 대전으로 이사한 빙택에서 공부를 계속하기로 하심
20. 1922년 3월 중순 서울 마포 도화동에 전셋집을 구하시어 백일 공부름 하심
21. 1922년 윤 5월 도화동이 협소하여 서울 돈암동 공부처에서 2차 백일 단도수 공부 계속하심
22. 1922년 9월 서울 적선동 3차 공부처에서 백일 공부를 하심
23. 1923년 세배를 받으시고 삼처삼도의 공부로써 서울 도수를 마침. 진법이 서울에서 조선 전토로 퍼지며 세계전역으로 퍼짐.
일갑이 지나면 태극을 품고 서울로 와서 세계일가의 기틀을 다지며 환호하는 날이 있으리라. 그대들은 새서울이 따로 있음을 알지어다 하심
24. 1923년 밀양 하남면 동산리 세천마을 공부처로 김병문의 집을 정하고 백일 공부를 하심 (둔도수와 납폐도수)
25. 1923년 밀양 상동면 유천리 장득원의 집에서 공부설석 후 백일 단도수 ==> 진인보두법으로 행하심
26. 1923년 6월 24일 구천성제님 화천일에 이재신원 및 전도문 하교
27. 1923년 유천리 백일공부 마치시고 1923년 8월 중순에 청도 화악산 적천사의 도솔암에서 백일 단도수공부 → 진인보두법으로 공부 하심
28. 1923년 태인 도창현에 가서 도장기지로 마땅한 곳을 찾으라 하심 (치마바위가 있는 비장처)
29. 1924년 5월 밀양 종남산 영성정 재실 에서 백일 공부하시며 납폐도수를 보시고 도인들도 각자 10만장 소화를 명하심. 용화산 반구정으로 옮겨 마치심
30. 1924년 8월 중순에 납폐도수 백일 공부를 마치심
31. 1924년 9월 만주로 가셔서 노고산 강동지방등 도수 보심 1925년 4월 15일 영대와 도솔궁 영건(옥경대 모습)
32.
1924년 4월 28일에 봉천명 겸한 영대봉안치성
무극대도 취지서 포유, 9월 19일 강세치성후 각도문 포유
33. 1925년 칠서 무릉에서 공부
34. 1926년 봄 부안 변산 최석래의 집에서의 공부는 15일 하심
35. 1926년 4월 회문리 회룡재 건축하심
36. 1926년 여름 한양 도렴동 백일공부 하시고 대치성을 올리신 다음 이번 서울도수는 금강산 도수의 전제니라 하심
37. 1926년 여름 금강산 유점사에서 금강산 백일공부를 마치시고 일만이천봉의 겁살을 벗김으로 정기를 거두심. 구천상제님도수를 풀었으므로 앞으로 108천이 105천이 된다고 하심
38. 1927년 9월 통사동 재실 공부 백일 주도수 보심
39. 1928년 원조치성후 포유문 포유
40. 1929년 9월 15인을 선발하여 개안공부시킴. 7일후 거두심
41. 1931년 겨울 도장 동편 관왕묘의 관왕상앞 마루에 병풍을 치시고 백일공부하심, 이튿날 관문장의 수염이 없어져서 검은 공단 3척으로 복원 시키심
42. 1932년 숭덕부인 화선하심 옥황상제님 어머니 이 무렵, 상제님께서 간척사업 금광채굴사업 등 하심
43. 1933년 봄 안면도 쇠섬 박영효의 집 백일 공부 단도수 공부하심
44. 1933년 4월 공부실 장검을 이상식에게 마음속으로 숨기게 하심. 순식간에 사라짐
45. 1933년 박준양 자식의 중병을 살리심 그러나 다음날 죽어 그 아이로 하여금 잠시 살아나서 죽어야 되는 운명이 있음을 알려주심
46. 1934년 1월 설날 전 도인은 100일 이내에 납폐지 10만장씩 소화하라 하교하심 (이는 무극주께서 구천상제님 제위에 임어하시는 인덕도수)
47. 1934년 4월 정음정양 원리로 여자해원도수와 삼천궁녀해원도수를 보심. 제왕들마다 기십기백의 후비 궁녀를 둔 폐단으로 쌓인 원한이 가장 심하므로 여자해원의 첫머리로 하노라
48. 1935년 간척공사 마무리하였으나 보령군에 강탈당함 조수와 토지를 조화시켜 해원시킴. 조수에 음양의 기운과 이치가 있고, 조수의 이치만 알아도 반도통은 되느니라.
49. 1935년 8월 추석치성후 잠룡도수선언 낙화도수 선언 27년간 허공부
잠룡기간 종교단체 해산령 (1936 ~ 1945) 10년
1. 1936년 전주 대정동 부근 1개월 공부하시고 완산동 뒷집에서도 공부
2. 1937년 전주에서 공부
3. 1938년 무신년 마산 교방동 공부
4. 1939년 선덕부인 화선 가을에 회문리 회룡재에서 공부
5. 1940년 이용직 연락 10월에 머슴살이 계약 끝나고 돌아와 시종 이때 혹독한 회룡재공부 목격함 법좌하신채 법수 두 그릇을 받쳐 드시고 철야 공부하시니라. 법수가 넘쳐 어수에 고드름이 달리고 어지는 동상으로 터져서 배접하시고 발에도 얼음이 박혀 부으셨으나 괴로워하시거나 동요하지 않으시니라. “내가 이렇게 하여야만 천하사가 성취되리니…”
6. 1941년 원조 주도수 공부하시면서 구천상제님의 인덕도수를 마쳐드린 다음 잠룡한지 6년 이제는 나의 인덕도수인 의관정제 진시삼천지반의 회룡도수가 다가오고 있으니 포덕시작
7. 1941년 4월 중순 숭도부인, 숭정부인과 준래에게 백일공부를 시키심 무릉산 장춘사에서 3시간씩 진법주로 법좌하여 백일공부를 3년간 시키심
8. 1941년 회룡재에서 상설도수 15일 공부하심
9. 1942년 봄 회문도장이라 명명
10. 1942년 가을 도갑신 도수를 도덕곡에서 도갑신의 한을 해원시키심. 개고기를 고사에 쓰심
11. 1943년 장남 준래 청봉, 차남 승래 청암, 삼남 영래 청구라고 호(號)를 내리심.
12. 1944년 득도한지 27년 지천명이라 이윤의 50에 시지사십구년지비와 홍성문의 27년간 허도수를 마침이니.. 창원 천주산 백일공부, 창생해방을 위해 해방도수를 혹한에서도 수행하심
태극도로 회룡,현룡 도수 (1945 ~ 1958) 14년
(1909 ~ 1945 : 36년 일제 강점기
= 1909년 봉천명 ~ 144년 무극대도 잠룡기간)
1.
1945년 봉천명한지 36년 잠룡한지는 10년. 지난 9년간은 잠룡 지각도수로 이제 새도수를 시작하고 월성금제도도 시행함. 성은 삼일성이어야…
2월에 회룡도수의 마지막 백일공부를 시작하심. 대도회룡 회룡재공부의 종결이며 법수 12그릇을 4그릇으로 그리고 5년만에 한그릇으로 고정하시니라 이를 낙반사유라
명하심. 이 공부중에는 법수를 양손에 드시고 밤낮으로 송주하시니 더 심한 고행을 하심. 오뉴월에는 땀으로 2,3차례 갈아 입으시고 때로는 쓰러지시기까지 하시니라.
천하창생을 살리기 위한 공부로서 피골이 상접하심. 이렇게 하여도 천하창생을 다 살릴수 없으니… 옥체가 피골이 상접하시니라
2. 잠룡도수기간(1936년~1945년)에도 치성은 거르지 않으시니라
3. 1945년 회룡재 후원에서 숭도부인께서 태극기 세우시고 혼자서 깃대를 붙잡음 이는 음양합덕의 태극원리, 정음정양의 기동도수로서 진시부터 오시까지 공부를 하심 태극기 세우는 공부 5일째 되던 날 8월15일 일본이 항복함. 그리고 태극기를 회룡재 앞으로 옮기고 공부계속하시니라.
해방도수니라. 증산 상제님께서 무극대운도수와 27년 허도수를 짜시며 왜인을 임시 일꾼으로 내세우리라.
4. 1945년 그 동안 무극의 표징인 왜기가 강토를 덮었으나 이제 태극의 국기가 휘날리니 태극의 기동도수니라.무극대도(1918년~1945년)로 27년간의 허령도수를 마침 무극도의 기틀로 인덕도수에 따라 구천상제위에 임어하심 무극과 태극의 관계 증정지간 잠룡 회룡 도수를 거쳐 태극도주가 되었음을 고하노라. (태극 4장 49절) 오도의 도명이 태극도임은 아직 일반에게 공표하지 말라.
5. 1946년 원조치성 후 상생 원리의 척사행마법의 놀이지도를 하시니라 상생은 서로 잘 살도록 하는 법이며 더욱이 남을 잘되게 하는 법이니 공생공존이 합덕이요, 공영공화가 조화니라맹인은 꽃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농인은 삼현육각이 울려도 듣지 못하듯 도안(道眼) 도이(道耳)가 열리지 않은 사람은 대도의 진주와 진법의 진경이 곁에 있어도 모름. 신체의 불구보다 도의 불구자는 만고처량한 하류군생이니라.
6. 1946년 태극4장 64절 6월 어느 날 회룡재에서 풍운조화를 보여주심
7. 1946년 추석에 용직에게 너를 바둑으로 비유하면 첫점과 같으니라. 이제는 제갈량과 황발부인 고사와 홍성문의 27년간 허공부에 대해 말씀하시고 이제는 허령지각 지나고 신명시대가 당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8. 1946년 한패공의 성공은 신모야곡에 있고, 한광무의 성공은 적벽부에 있으며 나의 성공은 오강록에 있다고 하심 4장 68절
9. 1947년 원조치성후 한패공은 좌고에 유72흑자는 사실이니 이로 인하여 초패왕을 이기고 한나라를 세웠다 하느니라. 이제 그와 같은 증표가 있음을 보이리니 보고 이 또한 천기니 함부로 누설하지 말라. 좌우고를 걷어 보이시니 과연 3적자와 72적자가 완연함.
10. 1947년 제 부모를 없다하지 못하듯이 도를 보지 못하여도 태극진리속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주의 대도인 태극의 진리가 멀리 있는 것으로 알기 쉬우나 사람의 일상생활 가운데 함께 있으니 업고 있고 안고 있으며 함께 숨쉬고 있는 막비도이다라고 하심.도를 눈으로 보고 믿지는 못할 것이요진법도리를 깨달아 믿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심불재도요, 도재심공이라 즉 도는 마음을 닦아 나가는데 있다.
11. 1947년 3월하순에 공부처 물색 하명하시고 4월에 문경 산북면 전두리 공덕산 대승사를 아뢰니 5월하순 대승사로 가셔서 주지승의 거절로 하루밤만 공부하시고 김룡사로 떠나 신 이후 대승사 화재남
12. 1947년 5월 박순석이 예약해 놓은 그 면의 김룡리 운달산 김룡사에서 며칠공부 후 화장암으로 옮기신 다음 대장부대장부도수와 천지일월음양도수로 백일 공부하심. 이때 숭례부인과 대장부대장부 도수와 천지 일월음양도수를 위해 박순석의 딸과 천지도수로서 성혼 하심
13. 1947년 혼인한 약석리 약산동 박순석집에서 20일동안 공부하심 이때 순석의 처가 수라시봉을 하였는데 전날 밤 꿈에 한 신인이 현몽하여 찹쌀 한 말과 좁쌀 서말을 주면서 이 쌀로 하느님의 수라를 지어 올리라 한 일이 있었으며 채소밭의 채소를 아침저녁으로 뜯어내어도 이내 자라나서 찬거리에 넉넉하므로 상제님의 덕화라 생각되어 더욱 공경하여 받들었음.
14. 1947년 10월말경 회문도장 회룡재로 돌아오셔서 공부 계속하심이목총명남자신 홍균부여불위빈 수타월굴방지물 미섭천근기식인 건우손시간월굴 지봉뇌처견천근 천근월굴한래왕 삼십육궁도시춘 ......... 잘 기억하여두라 후일 알일이 있으리라 태극 4장84절
15. 1948년 무자년 원조에 오도의 도명이 태극도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노라 주문의 무극도주를 태극도주로 고치시고 진법주의 외선조 응감지위에 이어 처선조응감지위, 처외선조 응감지위 추가하심
16. 1948년 무자년 부산의 공부처를 물색하시며 그 조건으로 산맥이 끝나고 용은 물이 필요하니 바다가 보여야 하며 수자가 든땅이며 태인도장 처럼 치마바위가 있어야 도수에 맞음. 부산은 백두 금강 태백 일월산 주왕산 보현산 금정산 낙동정맥이 응결 하천이 모여 낙동강과 동해가 굽이치는 산진수회처의 영국(靈局)이니라 부산은 제일의 국제항 관문 군창지 새서울 1906년 구천상제님이 백우를 잡아 공사를 보신곳이며 부산은 팔금산 입금산이라 증산상제님께서 내가 장차 금산사로 들어가리라는 이곳이니 천장길방 태극원점의 기지를 입금산이라야 얻을 수 있느니라, 가마산이 곧 솥산인 줄도 알라. 찾은 곳의 지형 지세가 낙동정맥의 남단인 엄광산이 구봉산으로 이어진 산맥의 끝을 이루는 치마바위가 있음. 오른쪽은 구덕산 천마산 백호 왼쪽은 복병산 용두산 청룡이 뚜렷하고 수자가 든 보수동 21번지니라 3월 15일에 보수동 주택으로 이어하셔서 집은 비록 협소하나 땅이 도수에 맞는 적지로다, 태극의 대운이 이에서 비롯되리니 이만하면 도장으로 쓰리라. 부산 행재소로 칭명하시더니 1949년에 부산도장으로 명명하심
17. 1948년 5월초에 도문가를 알려주심
도 문 가 (道 門 歌)우주는 호호하고 천지는 탕탕하다
5만 년 길고 긴 용화세계
8문을 넓고 높이 달았으니,
그 문이 무슨 문인고
1 6수 북문이요, 2 7화 남문이요
3 8목 동문이요 4 9금 서문이라
건 곤 간 손 4우문되어
궁을성덕 정도령은
대정수 5 10토로 태극조성하였으니,
장하고 성하도다. 어화 세상 도우들아
이 문에 참여하여 극락행복 받아 보세.
시구시구 조을시구
영세불망 만사시구
18. 1948년 7월초에 감천만 용담해변에 임어하셔서 산책하시고 환행하시다가 근처에 사는 최위출의 집에 거동하시니라. 그는 달포전에 공사장에서 골절상을 당하여 기동을 못하고 의사가 완치될 수 없다고 하였으나 너와 같은 성심자는 병신이 되지 않으리니 나를 믿고 안심하라 하시더니 며칠 뒤에 완쾌되니라.
19. 1948년 8월 금련사 마하사에서 백일 공부하셨으며 이 때 청학 백학 한쌍이 날아와 공부실에 인사하였고 법당의 불상이 좌협시불의 머리가 숙여졌음
20. 1948년 하산하셔서 시종들과 부산 시내를 둘러보시고 도장으로 환어하시니 여러 도인이 한길까지 나와 절하며 맞아 모시니라. 내가 무극대운을 태극진법으로 풀어 가느니 그대들은 오직 내가 베푸는 법방으로 신행하여야 공부를 성취할 수 있으리라. 금번 마하사 도수는 입금산도수라고 하시며 이제 부산에 들어왔으니 팔문을 열고 운수를 받아들여야 하느니라.
21. 1948년 50전 지폐를 다려서 바르게 펴라고 명하시면서 이것을 돈으로 보지 않고 도인들의 성덩어리로 여기느니라.
22. 1949년 5월말경 보수동장 앞 집 한 채를 매입 수리하여 도중가족이 거처하는 도장내당으로 정하심
23. 1949년 가을에 남녀 혼인은 인륜의 대사니 오도의 강령인 음양합덕조화이니라. 태극의 도리가 그 원원이 음양합덕이니 합덕 조화의 도리를 기초로 함. 서로 위하고 서로 화하여 합덕하는 것이니 태극진리가 곧 가정 규범의 원리니라.
24. 1949년 기도의 대상을 여쭈니 기도의 최고 대상은 오직 구천 옥황 양위상제님뿐이니…..오직 무극주와 태극주께 기원함이 옳으니라.
25. 1950년 복중80년도수에 따른 휴전도수를 보심. 납폐지소화
26. 1950년 새서울은 구천상제님의 도수에 따라 내가 공부하여 설법하는 통일신단 조화정부로서 삼계를 광구할 태극기동의 원점이니라.
27. 1950년 회룡재가 소실된 소식을 들으시고 하교하시기를 …잠룡이 장차 현룡 비룡하기 위한 회룡에 화둔을 묻는도수였느니 무가내(無可奈, 무조건해야하는 일의 의미)니라.
28. 1952년 1월 단도수를 다시 보심. 3월 15일에 납폐도수로 각 도인당 5만장 소화
29. 1953년 오도는 교정을 일체로 하느니라. 태극의 원리는 우주의 대도이므로 모든 정치의 근본 사상임을 그대들이 알아야 하느니라……나의 근본 소임은 인계에 국한하지 않고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며 사람의 상극정신도 뜯어고치시는 구천상제님의 도수를 합덕 조화 상생의 태극진법으로 실현하여 삼계에 보화하는 청화오만년선경을 건설함에 있으니 인류의 화평은 무위이화하리라.
30. 1953년 나의 도는 구천상제님의 공사에 따르는 천지인 삼계의 대도니라. 어느 한 사람의 복이나 빌고 선이나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전인류와 신명을 광구하여 함께 후천복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신 상제님의 도수로 진행되는 도이므로 오도는 결국 남 잘되게 하는 공부니라.
31. 1953년 11월 도장 공부실에서 공부하시면서 7일간 식음전폐하시어 생사판단도수 죽고살기를 마음대로 도수를 푸셨음
32. 1954년 원조치성후 구마이당로(九馬而堂路, 당로: 정권을 잡음, 요로에 있음) 도수라 이 도수는 나의 도가 도인이 모이고 세상에 알려지는 큰 도수
33. 1954년 포덕이 잘 될 뿐더러, 도인들의 정성이 지극하여 성금 헌납이 많아지고. 그 성적을 서로 비교 경쟁하는 양상을 이루니라. 그 중에서도 충주지방 안상익포감 부포감 박한경등에 과하면 불여불급하여 폐단이 되기 쉬우니 물의가 안생기도록 당부하심
34. 1954년 진화도수, 서역도수 납폐도수를 보심. 10월에 양산 영취산 통도사에 행행하셔서 경내를 순행하심
35. 1954년 4월 29일 화양동에서 도수를 보심황극신도수와 대신문도수를 보심 천둥번개치신 후 석문이 열림. 신문공사를 마치심이라고하심. 대신문을 여시는 도수 공사와 부합
36. 1954년 예수나 수운이 어떠하였던가를 보면 아느니라. 두사람 모두 성인은 성인이나 대성인은 아니니, 대성인은 비명횡사하지 않는다
37. 1954년 2차 공판기일이되어 청주로 행행하심. 7월22일 청주 여관 공부설석
38. 1955년 보수동 도장영건 공사기간에 산정에서 주도수와 납폐도수의 백일공부를 하심
39. 1955년 진법주의 직선조와 외선조 처선조 처외선조는 인류 조상의 근원이니라 하시니라
40. 1955년 보수동에서 감천으로 옮기시기 위해 5감에 임시 행재소를 마련하시고 이곳에서 장차 대학도수를 보게 되리라. 왈유정 관아재로 명명하심.
41. 1955년에 하교하시기를 … 감천의 험란한 지형과 빈번한 풍우를 탓하지마라 그렇지 않으면 이곳이 어찌 공동으로서 천장길방하신 도수지지로 남아 있으리요 ?
42. 1955년 태극도를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느냐? 6장 76절
1) 나의 도는 정도니라
2) 비뚤어진 천지를 정음정양으로 바로 잡고
3) 기울어진 북극성을 중앙으로 환원시키고
4) 오장육부를 뜯어고쳐바르게 함
새서울의 역할) 태극 5장 43절
"내가 말하는 새 서울이 어찌 한 나라의 수도이랴? 새 서울은 구천상제님의 도수에 따라 내가 공부하여 설법(設法)하는 통일신단(統一神檀) 조화정부(造化政府)로서 삼계를
광구할 태극기동(太極機動)의 원점 (原點)이니라." 하시니라.
43. 1956년 1월 설날 치성 후 농악과 윷놀이를 즐기시며, 남사당패의 박첨지 놀음에서 박첨지 역할을 박도전께 하라고 하심
44. 1956년 1월 27일 관아재로 거처를 옮기시고 구덕정사로 개칭하심
45. 1956년 3월 속리산 법주사를 방문하시고 철야공부 후 새벽 인시경에 미륵불 앞에 불공을 드리게 하시니라. 다음날 부산도장으로 환궁하시는 차안에서 “내가 이번에 황극신도수와 대신문도수는 완전히 마쳤다고 하심
46. 1956년 4월 시속에서는 선생이니 선각자니 하는 말을 분별없이 쓰고 있으나 내 앞에서는 쓰지 못하느니라. 더구나 님이란 존칭은 구천상제님과 나 이외에는 쓸 수없느니라.
47. 1956년 5월 천마산 옥녀봉을 가리키시며, 너희들이 믿고 감천에 왔으면 감천이 왜 천장길방인지 아느냐? 사쌍태가 있어 팔괘형국을 이루고 있으니.. 청학동은 잔돌평지라 하는데 감천은 왕돌 평지니…
48. 1956년 동학사 염화실에서 7일 공부하시고 “이번 공부는 만고충신신명의 해원도수를 봄이니라 하시니라.
49. 1956년 24일에 해인사로 행하시고 대적광전 앞의 다로경권에서 3일간 공부 계속하심 홍제암에서 공부하시고 이튿날 백련암 가야산도수를 보시고 큰 도수는 거의 다 보심
50. 1956년 보수동 부산도장을 보수도정으로 개칭하시고 구덕정사의 정침은 회룡재, 공부실은 산회당, 그 경내를 부산도장으로 명명하시고 장차 대학도수 청학공부를 열 것이며…… 하시니라.
51. 1956년 치천하 50년도수를 보았느니라. 도인을 위시한 천하창생의 기재양복치성을 올리심
52. 1956년 증산상제님은 단주해원을 위수로 하셨고 나는(도주님) 초패왕해원을 위수로 하느니라
53. 1956년 도통을 위한 수도는
1) 도통 3망 망기친 망기신 망기가
2) 불신 욕속 설독 다욕 환희를 경계하라
3) 상음 색음 자만 3음계를 경계
4) 안심 안신 경천은 수도의 기본 강령
5) 3요체는 성 경 신
돈오법으로 일시에 열어 주리라.
54. 1956년 나의 도는 삼계의 대도라. 세계의 모든 종교가 태극 무극의 본원에서 흘러나온 지류이니 …지방 방백에게 하는 충성보다 군주에게 하는 충성이 가장 으뜸임을 모름이니라. 너희들은 태극의 진주와 함께 도의 본원을 믿고 있으니 가히 진복자니라.
55. 1957년 설날 세배 후 잘 기억하여두라는 시를 내리심- 거년사월하사월 운래청룡시사월 -1957년 세배를 받으시고 삼천지반도수 보심, 모인 참례인원을 집계하니 3천명이라. 양 50년 만에 성취되는 삼천지반도수니라. (1860년 ~ 1909: 평천하 50년공부 최수운 ~ 구천상제님, 1909 ~ 1958: 치천하 50년공부) 중부 도인 세배를 위해 모인 도인수가 3천명이됨. 동청룡기동도수로 삼천지반이니….
56. 1925년~1957년 기도시간 변경을 아래와 같이 하교하셨습니다.
태극 3장 86절 1925년 12월 주문 13종의 봉송순위와 횟수를 다음과 같이 제정하시니라
태극 5장1절 1948년 1월 1일 주문의 무극도주를 태극도주로 고치시고 진법주의 “외선조응감지위”에 이어 “처선조 응감지위 처외선조 응감지위”를 추가하게 하시니라.
1956년 8월 23일 축시 기도시간을 기하여 도인들의 기도 행사 방법을 변경하명하시니.. 태을주, 해마주, 신성주는 각 3독하고 납폐지는 기도주 15장 도통주 9장 운장주
8장을 소화하며 배례는 전부 15배를 드리고 향남읍하게 하심
1957년 1월 5일 축시 기도시간을 기하여 변경하시니, 납폐지는 기도주 도통주 운장주 각각 3장씩 9장을 소화하고, 주문은 모두 종전대로 봉송하게 하시니라
1957년 1월 15일에 봉축주와 진법주의 무극신을 통극신으로 고치시고 납폐지의 1월 22일 주일에는 진법주의 처선조 처외선조 삭제하심. 주문 봉송 후 기도주 태을주
24회 연송하게 하시니라.
1957년 4월 26일에 봉축주와 진법주의 통극신을 무극신으로 환원토록 하명하시고, 납폐지에도 그와 같이 고치게 하시며 내 이제 무극과 태극의 진리를 통한 황극을
세웠노라 하시니라
태극 8장 85절 1957년 11월 주문의 봉송격식을 축문식(봉축주, 기도주, 진법주, 도통주, 신성주), 경문식(태을주, 칠성주, 이십팔수주, 이십사절주),
호령식( 운장주, 개벽주, 해마주) 재연습시킴
57. 1957년 2월 3일 그대들 뒤에는 언제나 보호신이 따라다니니 걱정이 무엇이랴 ?
58. 1957년 1월 말 통도사 범어사에 건축기술자 데리고 가람 구조 설비 상교하심
59. 1957년 2월 농아인 김천 방면 도인 원갑선은 석수도 아니면서 자진하여 다른 석수와 함께 지성으로 석축공사에 힘쓰므로 …… 공사 완료 무렵에 갑자기 갑선의 말문이 열림. 이 석축공사에는 옥녀봉의 바윗돌을 많이 쓰니라. 아래 부녀자들이 빨래하고 있었는데 이건우등이 이를 살피지 않고 그 위에서 바윗돌을 굴러 내리니…. 어수를 들어 바윗돌을 가리키시는 순간 굴러 내려오던 바윗돌이 중턱에서 멎었다가… 대강전 기초공사를 시작하심
60. 1957년 2월에 53년에 심은 은행 묘목을 도장내로 옮기시고 정자나무로 잘 가꾸라 때를 기다리기가 어려움이 아니라 마음 닦기가 어려움을 알라
61. 1957년 3월초 대강전 상량치성하시고 상량축문을 친제하심
62. 1957년 3월 25일에 여동빈이 저기 가는구나 옥추문은 내가 잠그고 왔는데..하시니라
63. 1957년 4월4일 오도의 중대사는 모두 4월에 이루어짐 양력이든 음력이든 봉천명 득도 천보 황극도수 태인 회문 부산도장 개시등 앞으로 더 큰 도수는 돌아오는 4월이니라거년 사월하사월 운래청룡시사월
64. 1957년 4월 증산상제님의 허도수로 인해 내가 50평생을 허도수 허공부에 시달렸으나 갑신년 1944년 도기36년(봉천명기준) 시지49년지비도수에(강세 ~ 잠룡기간까지) 따른 인덕도수의 실공부로(태극도 이후) 전환한지 13년이니라 이윤의 도수
65. 1957년 4월 용마 신귀는 모두 물에서 나왔고 하우씨의 9년 치수는 낙서에서 유래함이나, 나의 5만년 후천대운은 오강록에 유래함이니라. 낙수와 오강은 강하의 종류이나 이곳 감천용담은 황하와 낙수로 통하는 낙동강과 동해의 수회처니라. 너희들 누구나 제 한 몸이 곧 소우주며 도와 일체임을 자각하여야만 대도 진법의 진도인이니, …이미 도인은 천지인 삼계의 역군이나 후천삼계개벽의 역군이 되어야 하지 않으랴 ? 하시니라.
66. 1957년 4월말 대강전이 완공되고 명칭은 원위대강의 대강전으로 명명 내가 장차 50년 공부를 종필할 곳이며, 그대들이 심령심대를 봉안하고 진법을 봉행하여 대강을 봉대할 오도유일의 지중한 성전이니…수운이 기도주를 봉명한지 50년 만(1907년)에 대강의 계대 마련되느니라. 내가 50년 공부로써 찾은 곳이 감천이요, 그대들이 기도하는 소원이 오직 대강이므로 이 바로 천기요 도수이며, 5만년에 유일하고 우주 간에 무이한 성전이니 이곳을 새서울이라 함도 이 성전이 있는 연유이니라.상하층의 출입하지 않는 창문은 공창이라 하시니 일 월 용자의 형상이니라.
67. 1957년 4월 영대의 봉안상 준비준비하시면서 내일을 내가하다니.... 하시고 일일이 그 장광척촌과 칠에 이르기까지 세밀히 지도 감검하시니라. 1957년 4월28일에 봉천명 치성일에 대강전 영건과 영대봉안 치성을 겸하여 봉행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68. 1957년 4월29일 대강전이 영건된 후 법단에 설석하셔서 "자금이후로는 도법이 출어법단이니 내말이 곧 도법이니라"
69. 1957년 4월 30일 상제님께서 옻으로 옥체가 붉어지셨으므로 임원들이 약을 진상하며 상고하니… “ 중궁에 옻 냄새로 도인들이 옻이 오르지 않도록 대속함이니라 “ 하고 약을 물리시니라.
70. 1957년 5월 중 허령 지각 신명 3단계 도수를 하교하시고 이제는 완전한 신명시대라 하시니라. 1957년 5월 태을주의 의미를 알려주심. 만사무기 태을주 포덕천하 태을주 소원성취 태을주니라 1957년 5월 기도행사에는 마음가짐과 장소도 중요하니… 사가에서 열번 보다 회의실에서 한 번이 낫고, 회의실에서 열 번보다 도장에서 한 번이 나으니라. 하시니라
71. 1957년 7월 나의 공부는 천장길방하신 감천 용화도장에서 일만이천 도통군자를 일시에 내는 공부니라 1957년 7월 복을 남보다 먼저짓고 늦게 받을 생각을 하라오래 안심 안신하라. 좋은 생각을 먼저 지으라그대들이 기다리는 때는 오직 좋은 시절을 말함이나 …. 알고 말하면 누설죄 모르고 말하면 기만죄 정히 답답하거든 세상사를 살펴보라147. 1957년 8월 8일 지리산 쌍계사를 가셔서 백의군왕 백의장상도수를 보신 후 지상에서 볼 도수는 거의 다 마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리산 신령은 여신령이니라. 8월 16일 지리산공부에서 돌아오신후 지리산에 불이 나고 상제님께서 “산이 다 타서야 되겠느냐?” 하시더니 폭우가 쏟아져 자연 진화되니라.
72. 1957년 8월 23일 은진 관촉사의 미륵불상과 연산 개태사의 철확(鐵鑊)을 관감하시니라. 개태사의 미륵삼존불 전설 하교하시니라
73. 1957년 윤8월26일 축시에 여러 시종들을 시좌시키시고 봉천명부터 삼천을 모신일까지의 경과사를 말씀하시니라. 1957년 8월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진주는 내가 잡고 이제 뽑기까지 하였으니 까기만 하면 되는데 까기는 여반장이라 너희들이 하라
74. 1957년 9월 13일 청구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회룡재 정침에서 독서하시는 상제님 진영을 촬영하니….. 영래가 한 일은 저도 모르고 한 일이나 도수에는 맞았느니라. 사진사를 불러 촬영하여 4장을 마련하게 하시니라.
75.
1957년 9월 18일 영대의 옥황상제님 위폐의 위지를 떼어 소화하신 다음 그 위에 옥체진영을 봉안하시니라. 도주님을 촬영한 사진(중궁 영대 1장, 중궁 법단 1장,
보수도정 영대에도 1장)을 옥황상제님 영위에 진영을 봉안하시니라. 이때부터 4배를 올렸으나 화천하신 후 그 연유를 깨닫게 되었음
9월19일 강세치성 진설중 도주님진영위 주저 미련하냐 뜻대로 하라하시므로 진반하고 치성을 봉행하니라. 다음날 임원들을 영대앞에 원형으로 부복시키시고 현무경
도수를 모두마치고 이제 한 장의 도수만 남았느니라 내가 닫고 온 옥추 문을 다시 열러 가는 도수니라 부복한 채 하교를 모셨을뿐, 어느 장인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어의도
깨닫지 못하니라.
76. 1957년 11월초 궁즉변(窮則變)하고 변즉통하며 통즉원시반본이니라 하심 태극 8장 82절
77. 1957 년 11월 오시 동지치성 후 50년 공부종필할 도수라하심 대강전도 이만하면 쓰리로되, 허는 외화내빈한 법이라 남은 일은 도인의 수심연성과 진법공부 만 남았다고 하심 50년공부로써 이룬 광구천하의 공부법방이니 유일무이한 진법이요 천지대학이요 청학 이니라, 36궁 도수이니 이 일을 명심하여 봉행하라.
78. 시학 시법 공부 1957년 11월 18일 연습시작하게 하시고 동시에 법단에서 백일공부를 시작하시니라. 그리고 11월 28일 갑오를 기하여 제 1반부터 정식공부를 봉행하도록 하라” 하시니 정식 시학공부를 봉행하게 되니라.
79. 1957년 9월 18일 옥체 진영을 영대에 봉안하실 때, 구천상제님 진영보다 좌대를 5푼 낮게 하시니라. 12월 초3일에는 양위 진영의 크기를 동일하게 새로 조성하셔서 다음날 상제님(도주님) 강세치성 직전에 봉안하시니라.
80. 1957년 12월 14일 제1회 합강식 이후 오도의 궁극목적은 도통이나 수도 없는 도통 없고 진법없는 법방이 없고 법방없는 수도도 없으니… 50년 공부의 결정이라 하고 또 삼계광구의 유일한 진법이라 하시니라.
81. 내가 진정 말하노니 가정이 선경의 제일관이요 생업이 수도의 초입문이라 공자의 수신제가나 맹자의 항산 항심이 이 뜻이라 불가에서도 평상심 시도라 하느니 가정과 생업에도 충실하라. 수도공부의 진법 법방에는 사욕이 제일 금물이라 무아 무심 무욕 무착으로하되 자통이 없음을 명심하라개인과 전체를 합덕공부로 임하라 나만 나부터를 버려라
82. 1957년 12월25일 조회석상에서 호를 내리심한경은 우당, 금현과 상철은 오미당과 청음중에서 수의하여 나누어 쓰라 금현은 청음으로 하고 상철은 오미당으로 정하고 사뢰니 금현은 호의 상식이 있으니 청음은 철규에게 주라” 하시니라. 다음날 조회에서 규오에게 건월달이란 호를 내리시니.. 내가 생각하기에 신묘한 글자는 날 출자니 양산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는 산자를 넣은 호는 못쓰느니라. 하시므로 금현이 그 출자를 저에게 주시옵소서. (충주방면: 안상익, 박한경, 유철규, 안상익 사후, 충주방면을 분리하여 충주 박한경, 괴산방면 유철규 임규오 괴산방면은 청주방면으로 개칭) 금현은 출재, 최해창도 저는 출암으로 하겠나이다하니 윤허하시니라.
83. 1957년 12월 28일 내가 전에도 말한 바 있거니와 도를 대강전을 떠나 진법 밖에서 구하려 하지 말라. 통에는 자통이 없으니 대강으로 일시에 열어주리라 하시니라. 또한 “ 한 포기 풀이나 한 그루의 나무에도 신이 있고, 음성의 고저, 풍류의 장단, 그밖의 서자, 도화가 모두 음양합덕 태극진리의 표현이니, 예능에도 이 도리를 통한 자만이 달인이니라. 또 “내가 설한 공부 법방은 전만고 후만고 천상천하에 유일무이한 진법이므로 다른 날 누가 아무리 모방한다 하여도 그것은 가법일 뿐이니라. 임원들에게 장래의 도장정비를 하고하시며, “적어도 1군단 1,620명은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하며, 그곳에서 비를 맞지 않고 대강전에 출입할 수 있는 지하도라도 내도록 하라. 하시니라또한, 매년 정월 보름치성은 보수도정 영대에서 봉행하도록 하명하심 “수도인은 항상 확신과 집중으로 정진하되 욕심을 내지 말며,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좋아하지 말고, 좋지 못한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라. 아무리 자랑할 일이 있어도 심적으로 아정하여 함부로 설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농신, 적신, 자랑을 좋아하던 자는 자만계를 넘기가 어려우니 삼가하라. 또한, 과거에 상인해물한 죄를 지은 자는 응분의 형화를 받아 앞길이 막힐 것이니, 이에 상응하는 각골정려의 수도와 적공이 있어야 내가 비로소 사면하고 앞길을 틔워 주리라. 도인 상호간에는 위계에 불구하고 서로 존대하며 경어를 쓰라 하시니라. 9장
84. 1958년 1월 설날 세배후 말씀하시기를 “내가 비결이란 비자 한 자로 인하여 종내 백발이 되었고 더욱이 금년으로 꼭 50년이니 감회가 깊도다. 이제 비자는 모두 체득하였으니 일언이폐지하면 증산상제님의 전서는 나의 비결이요 내 공부의 전서는 그대들의 비결이라 또 하교하시기를 "도를 나타냄에는 문자 전서밖에는 없되 나라마다 다르고, 또 한정된 문자로 어찌 도의 본의를 다 표현하랴? 또 도를 전하고 가르침에는 언설(言說) 이외에 무엇이 있으랴마는 이 또한 진리의 외양(外樣)일 뿐이니 문자와 언설의 이면( 裡面)에 내재(內在)한 진리, 즉 무극시태극(无極是太極)의 체용(體用)은 원시반본의 심법(心法)이라야 깨달을 수 있느니라." 하시니라.후천세계는 지금도 당진하고 있되....인간이 함부로 참견할 일이아니니라ㅡ 다만 천기에도 성사는 재인임을 알아야 하느니라“그대들 가운데 누가 나를 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방자한 소리니라. 용은 여의주를 입에 물었고, 금산사 장륙금신은 손에 들었으며 증산 상제님께서는 입술 속에 감추셨고, 나도 여기 있느니라 하시며 혀를 들어 보이시니 혀 밑에 단주가 영롱하니라.
85. 1958년 1월 8일 대강전 회관에 1월8일부터 5일간 24절주 28수주 번갈아 연송공부하게 하시더니 5일 후에 거두시니라.
86. 1958년 1월 18일 갑신부터 시법공부를 봉행하게 하시니라.개시를 명하시고 하교하시기를 “시법공부는 즉석강식이니라. 시학을 마치고 시법공부만 잘하면 누구나 도통의 경지에 올라 선경에 참여할 수 있으리니, 이는 곧 유일무이하고 외차무극한 태극의 진법임이니라.” 시학공부와 초강식을 마치지 못한 도인은 마친 도인으로 교체하여 편성. 시법 공부를 마쳐야 합강식에 참례할 수 있느니라. “너희는 시법공부의 신성함을 더욱 명심하라 진법주공부며 공부실도 나의 법단과 상통함을 보라” “너희가 나를 따르게 된 삼생의 인연도 중요하나 수도공부 또한 지중함을 명심하라”태극진경 9장 13절 너의 학교 공부도 도를 위하여 쓰면 정도가 되고 수도의 전제가 되리니 도심을 갖고 더욱 면학하는 것이 지금 너의 수도생활이니라. 학식 있다고 자만자는 장교자패니라
87. 1958년 1월 23일 포덕은 수효로 따지지 말고 성심자를 성심으로 찾으라. 끝까지 대강전을 받들어 수호하며 진법을 수행하는 성신자만 하더라도 도운은 흥왕하리라. 대강을 대강전을 떠나 다른 곳에서 찾거나 도통을 내가 설법한 진법공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얻으려 한다면, 그러한 생각만 가져도 배신 배도자가 됨이니 계지신지하라.
88. 1월 28일에 2,3,4호 45개반 정원 1,620명의 봉강식을 올리게 하시니라. 이 봉강식은 후일에 있을 대강식의 날짜를 기념하기 위하여 봉행하는 예습이니라. 제 1호는 특수반이니 이 반의 대강식도 후일 함께 있으리라. 대강식은 후일에 있느니라. 그때에는 도인 각자가 집이든 직장이든 어디에 있더라도 전진고가 울리면 대강전으로 몰려들어 문이 있는 대로 올라오게 되리라. 그리하여 자기가 닦은 공을 자기 스스로의 혜각으로 알아서 자기 자리를 찾아 서게 되므로 오늘과 같이 혼잡스럽지 않으리라. “도는 곧 진리며 태극이니 우주의 자연법칙이며 인간의 당위법칙이므로 천지인삼계의 유일한 법칙이니라”도는 각이통하고 교는 학이달이이니라 언어 문자도 무불통지하고 무불능언하므로 만방의 언어 문자를 통일할수 있느니라사람의 몸에 구령삼정이 있고 천상에는 구성삼태에 상응함이므로 인신은 소천지라.천상에는 팔만사천 제대신장이 계시고, 몸에는 팔만사천모원공이 있고 그 모원공마다 모원신이 있느니, 태을주의 정기가 차야 도체도골이 되느니라39규가 있고 오도는 39규 모두 통함이다. 자통은 없으므로 내가 열어 주어야 통하리라. “법좌시에는 대월상제를 영시하는 심법으로 취정회신하여 단전에 마련하여야 하느니라”후천은 청화명려한 유리세계 인간과 신명이 조화하여 상합 상통하고 구별없이 살게 되느니라 “나의 일은 구변구복도수로 성취되느니라” 나의 공부는 곧 50년 고행이니 고생은 내가 하고 안락과 호사는 너희가 누리리라.” 하시니라.
89. 1958년 2월 5일 이는 본시 진법이며 진법이므로 3개호 45개반이 1군단이고 1군단이라도 족하나 증원하려면 4군단이라야 하느니라청처짐하다는 말과 같이 우리도는 맨 나중에 이루어지리니.. 사술자들이 늘어나 천마산 옥녀봉을 훨훨 날아다니며 나를 따라야 도통도 하고 산다고 하며 혼천동지하는 현혹에 의심나고 땀날일이 있을 것이다.
90. 1958년 2월 15일 금현이 여쭈시기를 “어느 비결에 청실기주(靑失其柱) 향무일점이라는 구절이 있사온데 그 뜻을 하교하여 주옵소서하니 너희 스스로 곧 알게 되리라.
91. 1958년 2월 23일 3대 도전으로 박한경도전 임명하시고 도중 전반을 책임지는 업무를 맡기심.
92. 태극 9장 53~55절 1958년 2월 26일 남의 말을 하지 말라. 마음 지키기가 죽기보다 어려우니 너희들 스스로의 심도. 심음을 신명이 매타함을 두려워하라 (마음으로 도둑질하고 마음으로 음탕함을 하는 생각) 무극의 진체와 태극의 진용을 봉대하면서도 도인의 수도와 미도인의 포덕을 오도하여 어지럽히고 미혹하게 할자가 있으리라 이 실로 가체 가용자보다 더욱 이단난적이 되리니 너희는 오직 정도를 닦고 정법을 지키라.
93. 태극 9장 57절 1958년 2월 28일에 지난 11월 18일 시학공부시작부터 시작한 백일공부를 마치시고 (음력) “이제 내가 이 세상에서 볼 도수는 모두 마쳤으니 이로써 50년 공부 종필을 선언하심구천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풀었다 함을 올바로 깨달아 알고 있느냐 ? 때가 이르면 나도 인신을 해탈하여 옥경으로 돌아가리니 진실로 헛으로 듣지마라지기금지사월래요 운래청룡시사월이니라 3번째 말씀하심1958년 2월 28일 이어서 나의 공부종필의 참뜻을 다시 한번 말하리라. 구천무극주님께서 친히 9년공사로서 짜 놓으셨으니 그것은 체요 원리니라. 나는 도로써 용하여 만수도인을 만들어 기르고 무극 태극의 창도를 함이니 이 실로 무극의 정에서 생겨난 태극진리의 기동도수니라.도를 어떻게 믿고 배우고 닦고 행하라는 진법이니 솥이 있어야 시루를 쓰는지라. 이로써 증정지도 증정지덕 증정지교 증정지학 증정지수 증정지화가 성취됨이라 나의 공부는 구천상제님의 도수와 음양이며 동정이며 본말이며 전후며 백중이니라. 음이 있고 양이 있음으로 태극이 기동함이니 이로써 종필이니라 태극 9장 59 ~ 60도인의 심령신대 가운데 나도 항상 함께하고 도도 함께 함이니라 나를 보지 못하는 도인들의 신심은 더욱 지극하여야 하리라내가 명한 수도법방은 공부종필의 총결정이며 전무후무한 삼계의 진법 이며 유구 5만년 도인의 규구니라 수신 수도 영총 도통이 이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느니라
94. 1958년 3월5일 나의 길은 정해졌으니 오직 구천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여아동거(與我同居)의 도수니라명교를 받은대로 공부를 종필하고 천계에 알현하리니 나는 도로써
일체임이니라. 그러한 원시반본의 대도수를 모르고 너희들이 인간의 정으로써 걱정함이 안타까우니라.증산상제님께서는 화천 직전에 창생의 질병을 대속하셨으나 나는
이미 50년 고행으로 대속하여 후천 창생으로 하여금 안락을 누리게 하였노라.3월 6일 예금 통장과 인장을 한경에게 창화증권은 용화에게 하탁하시며 이는 도중 공유니
너희들이 각기 잘 보관하였다가 후일 공의에 따라 도단의 사업에 쓰도록 하라 하시니라.1958년 3월6일 사시경에 청봉(준래)에게 하명하시기를 나의 도는
요순우상전지법이라고하시며 도중사에 일체 관여하지 말 것을 다짐 받으셨습니다.
옥황상제님 유명)
50년 공부종필(終畢)이며 지기금지사월래가 금년이니라. 나는 가노니 내가 없다고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나의 법방과 사업을 푼각도 어김없이 내가 행하던 대로 잘 행하여
나아가되 일심으로 믿고 닦아서 다시 만나자.
잠시 후에 와석하신 채 어수를 좌우로 흔드셔서 내쫓듯하시며, 도적놈 내쫓아라” 반복하시므로…. 하오 1시37분 경
감나무골을 분부하시며 화천하셨습니다.양력 4월 24일 일진은 신미 시각은 을미시 64세이시다.
50년 공부 종필 법방 핵심 요약
무극도주이시고 태극도주이신 도주님께서 50년 공부 종필로서 완성하신 법방이 무엇인지를 재정립하여 수도인들의 마음속에 올바른 도를 세우는데 기초가 되도록 하고 도주님 화천 이후에 수정된 법방과 구분함으로서 도주님의 50년 공부종필의 대덕을 계승하여 도를 빛내어 천하 태극의 도를 바로 세우는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1. 수도 공부의 주문
1)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 화천 하시기 전에 완성한 주문
2. 수도 공부하고 대강할 장소:
1) 대강전
3. 도인의 수심연성
1) 신조, 무극도, 태극도 취지서
4. 수행 법방
1) 시법, 시학, 초강, 합강, 봉강, 대강
도주님 법방 요약표
도통 계승 | 재세 시 | 화천 후 | 정도 정립 | |
---|---|---|---|---|
기도 | 주문 | 대운대사 | 도문소자 | 대운대사 |
납폐지 | 산회당, 구덕정사 | 제외 | 산회당 구덕정사 |
|
시간 | 한국시간 | 일본시간 | 한국시간 | |
장소 | 시법, 시학 → 시범시행 |
시법 ○ 시학 × |
대강전 | |
공부 | 대강전 | 대강전 | 대강전 | |
유명 | 경천, 수도 | - | - | |
수심연성 | - | - | ||
성사재인 | - | - | ||
무아, 무심 무욕, 무착 |
- | - | ||
전체합덕공부 | - | - | ||
진법공부 (시학, 시법) |
- | - | ||
도주님공부의 전서 | - | - | ||
사도인화 금지 | - | - | ||
거년사월 하사월 운래청룡시사월 |
- | - |
도주님께서 명심하라 하신 유명
1) 1958년 태극 9장 58절에 내 이제 구천상제님이신 증산 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풀었다” 함을 너희들이 올바로 깨달아 알고 있느냐 이미 지기금지 사월래요 운래청룡시사월이니라
2) 태극 9장 70절에 보면, 50년 공부 종필이며 지기금지 사월래가 금년이라 1958년 나는 가노니 내가 없다고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나의 법방과 사업을 푼각도 어김없이 내가 행하던 대로 잘 행하여 나아가되 일심으로 믿고 닦아서 다시 만나자”
3) 태극5장64절 내가 상제님의 도수로 무극 대도를 개창하였으니 이는 체를 밝힘이고, 다시 태극의 도문을 열음은 그 도수를 푸는 용의 기동이니라, 내가 이제부터 그대들에게
설할 모든 법방은 무극주의 체를 태극주로서 용함이니라고 하셨으며, 그대들이 도인으로서 이 체와 용에 따라 공부함은 개인의 도통 완공에도 목적이 있으나, 천지인
삼계공사에 참여함이니 오 만년 후천선경을 완성할 성사재인의 큰 뜻을 알라.
구천의 도수와 나의 법방이 아니면 이룰 수 없음을 각골 명심할지어다 1953년
4) 태극 7장 33절 1956년 그러므로 내가 베푸는 법방만이 만인간에게 안심 안신을 주어 광구하리니 경천 수도를 게을리 말지니라”
5) 태극 8장 108절 1957년 오도 진법 수도 법방이 당진함을 …. 오도의 목적은 도통이나 수도 없는 도통이 없고 진법 업는 법방이 없으며 법방 없는 수도도 없으니 이제 법방의 당진은 도통의 첩경이요 기초동량이니라, 내가 이 법방을 “ 50년 공부의 결정이라 ” 하고, 또 “삼계광구의 유일한 진법이라”…
6) 태극 8장 113절에 수도 공부의 진법 법방에는 나만 먼저 성취하려는 사욕이 제일 금물이니 무아 무심 무욕 무착으로 하여야 하되 이 법방은 수련 정진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며 자통이 없음을 명심하라
7) 태극 8장 110절에 오도의 수도 법방은 곧 태극의 용임을 다시 각지하라 이는 개인의 도통 성취만을 위함이 아니요 도단 곧 전체 도인을 위하고 군생광구를 위한 법방이니라. 그러므로, 개인이 곧 전체며 전체가 곧 개인임을 깨닫고 합덕공부로 임하되 “나만” 또는 “ 나부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느니라
8) 태극 9장 44절에 앞으로 배도자의 기승하는 난동과 각 종파의 도통했다는 사술자들이 나타나 천마선 옥녀봉을 훨훨날아다니며 나를 따라야 도통도 하고 산다고 하며, 혼천동지하는 현혹에 의심나고 땀날 일이 있을 것이나 “청처짐하다”는 말과 같이 우리도는 맨 나중에 이루어지리니 그때에도 너희들은 나를 믿고 궁단속과 법방수행을 잘하라. 제일 중요하니라.
9) 태극 9장 57절에 1958년 시학 공부 시작때에 설석하셨던 백일공부를 마치신 다음, “이제 내가 이 세상에서 볼 도수는 모두 마쳤으니 이로써 종필이니라, 앞으로 남은 일은 오직 너희 들이 나의 50년 공부 종필로써 설법해 놓은 진법의 법방을 수행 하여 대도를 성취함에 있느니라.
10) 태극 9장 62절에 내가 명한 수도 법방은 공부종필의 총결정이며 전무후무한 삼계의 진법이니, 유구 5만년 도인의 규구니라, 수신 수도 영통 도통이 이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느니라
11) 법방이란 시학, 시법과 초 합 봉강을 설법하셔서 시행토록 하신 이래 수도 공부에 간하여 내리신 명령이다.
12) 태극 8장 83절
대강전도 이만하면 쓰리로되 앞으로 남은 일은 도인들의 수심연성과 천지음양 이기에 대응상속하여 대강과 도통의 전제가 되는 진법공부 한가지 뿐이니라.
13) 태극 9장 1절 (1958년) 무술년
무술년 원조 세배석에서 임원들에게 하교 하시기를 “내가 비결이란 비자 한 자로 종내 백발이 되었고 더욱이 금년으로 꼭 50년 이니 감회가 깊도다. 이제 비자는 모두
체득하였으니 일언이폐지(한마디로 능히 그 뜻을 다함)하면 증산상제님의 전서는 나의 비결이고 내 공부의 전서는 그대들의 비결이니라. 그러므로 증산 상제님께서도
문명은 후일 진경으로 나오리라” 하셨느니라.
14) 태극 9장 10절 1958년
너희는 시법공부의 신성함을 더욱 명심하라. 이 공부가 진법주공부며 공부실도 나의 법단과 상통함을 보라
15) 태극 9장 11절 1958년
너희가 나를 따르게 된 삼생의 인연도 중요하나 수도 공부 또한 지중함을 명심하라.
16) 50년 공부종필 선언하심 (태극 9장 57절) 1958년
이제 내가 이 세상에서 볼 도수는 모두 마쳤으니 이로써 종필이니라.
앞으로 남은 일은 오직 너희들이 나의 50년공부종필로써 설법해 높은 진법의 법방을 수행하여 대도를
성취함에 있느니라.
17) 태극 5장 65절 1953년
그대들이 도인으로서 이 체와 용에 따라 공부함은 개인의 도통 완공에도 목적이 있으나, 천지인 삼계공사에 참여함이니 오만년 후천선경을 완성할 성사재인의 큰 뜻을 알라.
그러나 구천의 도수와 나의 법방이 아니면 이룰 수 없음을 각골 명심할지어다.
17-1) 태극 6장 25절 1955년
연원이란 연(못, 물, 도)의 근원으로 상제님의 자리를 의미한다. 1955년 을미년 태극 6장25절에 도주님께서 하명하시기를 “ 그대들이 근자에 연원이니 연운이니
하여 내도인 네도인, 혹은 내 방면 네 방면으로 구별을 짓고, 사당을 만들어 도랑을 치는 폐단이 적지 않으며,
도인을 사도인화하는데 연원도 방면도 모두 도주인
나에게서 나오느니라. 사(개인)당은 사(죽을)당이고, 사(개인)도인은 사(죽을)도인임을 각골명심할지니라
18) 태극 6장 40절 1955년 이주할 곳은 감천이라야 하느니 그곳은 천장길방의 땅이니라. 감천을 감래가 바로 그곳이며 새서울이 그곳이니라. 감천에서도 해변이 아닌 도장 산소를 모신 반월령으로부터 천마산과 옥녀봉의 두 산록이 서로 맞닿은 동구까지의 천마옥녀 음양합덕지궁이라야 도수의 땅이 되느니라 너희는 이를 명심하고 저들과 협의하되 이 또한 천기니 누설하지 말라.
19) 태극 7장 25절 서가는 천상천하에 유아 독존이라 하며 자만하였으므로 그 공부가 원만대도통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자만계의 경지를 잘 넘기고 상제님께서 하감하심을 명심하며 무아무상으로 하여야 소원성취하리라.
20) 태극 8장 12절 1957년 2월초 3일에 .. 그대들 뒤에는 언제나 보호신이 따라다니니 걱정이 무엇이랴 ? 그러나 좋은 일은 항상 마가 많고 파란 곡절이 있는법이니 좋은 운수를 받으려면 먼저 그만한 시련이 있음을 명심하라
21) 태극8장1절 정유년 원조에 1957년 내가 글 한 구를 외우리니
잘 기억하여 두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거년사월하사월 운래청룡시사월
(去年四月何四月 運來靑龍是四月)
지금까지의 4월은 어떤 사월인가? 앞으로 다가올 청룡의 운도 이 4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