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극진경
제목 | 태극도 - 무극진경 6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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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천상제님께서 병오(丙午 : 도기 전 3, 단기 4239, 서기 1906)년 정월 초5일 종도들에게 하명하시기를 "오늘은 호소신(好笑神)이 올 것이니 너희들은 웃음을 조심하라. 만일 웃는 자가 있으면 이 신명이 공사를 보지 아니하고 돌아가리라. 그가 한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지 모르느니라" 하시니라. 여러 사람이 각별히 조심하더니 뜻밖에 정성백(鄭成伯)이 웃으므로 일동도 모두 따라 웃으니라. 이날 오후에 성백이 갑자기 오한 대통(惡寒大痛)하여 3일간을 일어나지 못하는데, 상제님께서 어루만지시며 글 한 구절을 읽으시니 곧 나으니라. 이때 상제님께서 날마다 물형약도(物形略圖)를 그리셔서 불사르시니라.
2
이달 21일 신원일이 상제님께 배알하고 여쭈기를 "제가 일찍이 궁감(宮監)이 되어 궁도조(宮賭租) 수백 석을 범포(犯逋)하였사온 바, 궁에서 부안군수에게 위촉하여 독촉이 더욱 심할 뿐 아니라, 장차 재산을 몰수하려 하므로 피신하여 왔사오니 선생님께서 풀어 주시기를 간청하나이다." 하니 "그 일을 풀기는 어렵지 아니하니 이곳에 머무르라. 오늘부터 7, 7(49)일이 되는 날 너에게 생문방(生門方) 도수를 붙여 주리라." 하시니라. 원일이 그 후 상제님을 모시고 서울에 다녀와서 집에 돌아가니 궁토(宮土)의 제도가 폐지되고, 따라서 궁감들의 범포도 모두 면제되었으므로 "까다로운 궁폐(宮弊)가 없어지고 여러 궁감이 살길을 얻었으니 이는 모두 천은이로다." 하며 감격하니라.
3
3월 초2일에 큰 공사를 행하시려고 서울로 행행하실 때, 김형렬에게 하명하시기를 "전함(戰艦)은 순창(淳昌)으로 회항하리니 너는 지방을 잘 지키라." 하시니라. 다시 종도들에게 각각 소원을 기록하게 하시고 그 종이로 안경을 싸서 간수하신 다음, 남기 성백 갑칠 광찬 병선 등을 거느리시고 군산에서 기선을 타기로 하시고, 원일 등 5인은 "대전에서 기차를 타라."고 명하시며 "이는 수륙병진(水陸竝進)이니라." 하시니라. 또 원일에게 명하시기를 "너는 입경(入京)하는 대로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 써서 남대문에 붙이라." 하시므로 원일이 명을 받들고 일행과 함께 대전으로 떠나니라.
4
상제님께서 일행을 거느리시고 군산으로 출어하실 때, 병선에게 명하셔서 "영세화장건곤위(永世花長乾坤位) 대방일월간태궁(大方日月艮兌宮)"을 외우게 하시고 군산에 임어하셔서, 종도들에게 하문하시기를 "바람을 걷고 감이 옳으냐 놓고 감이 옳으냐?" 하시므로 광찬이 "놓고 감이 옳으리이다." 하고 아뢰니라. 이에 종도들로 하여금 오매(烏梅) 5개씩을 준비하게 하시고 기선에 오르시자, 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배가 심하게 흔들려 모두 멀미를 하므로 각각 오매를 입에 물게 하시니 안정되니라. 이날 밤에 갑칠에게 종이로 싼 안경을 주시며 "갑판에 올라가 북쪽 방향으로 바다에 던지라." 하셨으나, 갑칠이 선상에서 방향을 분별하지 못하여 주저하다가 내려오자 "왜 빨리 던지지 아니하느냐?" 하시므로, "방향을 분별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니 "번개 치는 곳으로 던지라." 하시니라. 갑칠이 다시 올라가 살피니 문득 번개가 치므로 그제야 그 방향으로 던지니라. 이튿날 인천에서 기차로 서울에 임어하셔서 모두 금연(禁煙)하게 하시고, 광찬의 인도로 황교(黃橋)에 사는 그의 사촌 아우 영선(永善)의 집으로 행행하시니라.
5
원일은 서울에 먼저 당도하는 즉시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는 글을 써서 남대문에 붙이니 장안이 크게 소동하여 인심이 흉흉하므로 조정에서는 엄중히 경계하니라. 서울에서 10여 일간 행재하시며 여러 가지 공사를 행하시고 벽력표(霹靂票)를 묻으신 후에, 종도들에게 하명하시기를 "모두 흩어져 돌아가라. 10년 후에 다시 만나리라. 10년도 10년이요, 20년도 10년이요, 30년도 10년이니라." 하시니라. 한 종도가 여쭈기를 "40년은 10년이 아니옵니까?" 하니 "40년도 10년이야 되지마는 넘지는 아니하리라." 하시며 모두 돌려보내시고, 오직 광찬만 머무르게 하시다가 며칠 후에 다시 만경으로 보내시며 "통지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 하시니라.
6
서울에 행재하실 때 진고개 극장에 임어하셔서 마술 구경을 하시는데, 마술사가 입으로 불덩이를 먹고 긴 양지를 한없이 뽑아내는 것을 보시다가 종도들에게 "왼손을 허리춤에 넣고 있으라." 하시니라. 그대로 하니 마술사가 갑자기 기절하여 쓰러지므로 극장이 크게 혼란하여 헌병까지 출동하였으나 쉽게 진압되지 않으니라. 상제님께서 냉수를 머금어 품으시니 곧 소나기가 쏟아져 군중이 스스로 흩어지니라.
7
영선의 이웃에 사는 오의관(吳議官)이 3년 전부터 폐병에 걸려 위기에 이르렀더니 상제님의 신성하심을 듣고 배알한 다음,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므로 글을 써 주시며 "이것을 그대의 침실에 갈무려 두라." 하시니라. 오의관이 그대로 하니 병이 완쾌되니라.
8
오의관의 아내가 청맹과니로 어린 시절부터 고생하더니 오의관이 상제님께 치료를 애걸(哀乞)하니라. 상제님께서 그 침실 문 앞에 임어하셔서 양산대로 땅을 그어 돌리신 다음, 소금을 조금 먹이시고 해 쪼이는 곳에서 사성음(四聖飮) 한 첩을 달여 땅을 파고 붓게 하시니 그 눈이 곧바로 환하게 밝아지니라. 오의관 내외가 크게 감복하여 지성으로 봉대(奉待)하며 일행의 경비를 전담하니라.
9
이때 광찬이 상제님께 옷 한 벌을 올리니 그 정교한 바느질을 칭찬하시니라. 광찬이 여쭈기를 "이 옷을 지은 여자가 범절은 훌륭하오나 앉은뱅이이므로 불쌍하나이다." 하니 "내가 한번 가보리라." 하시며 광찬을 거느리시고 임어하셔서 "그대의 정성을 보아 걷게 하리라." 하시니 그 여자의 굳은 다리가 절로 펴지고 힘을 얻어 자유로 보행하게 되니라.
10
이에 앞서 갑칠이 설사 끝에 변비로 10여 일간 고생하다가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니라. 마침 영선의 아우가 와서 과거에 순검이 되어 병욱을 잡으러 남원에 갔던 일을 말하니,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그때 쓰던 군도를 가져오게 하셔서 영선의 침실 벽에 세우시고 갑칠을 홀로 자게 하시며 "오늘 밤에 담배 한 갑을 다 피워 연기를 내라." 하시니라. 갑칠이 새벽에 군도 쓰러지는 소리에 심하게 놀라더니 변비가 절로 나으니라.
11
서울에서 갑칠을 동곡으로 돌려보내시며 하명하시기를 "네가 가서 형렬과 성백으로 더불어 49일간 매일 종이등 한 개씩을 만들고, 또 각각 짚신을 한 켤레씩 삼아 두라. 그 신으로 천하사람에게 신게 할 것이요, 그 등으로 천하사람의 어두운 길을 밝히리라." 하시므로 갑칠이 돌아와서 명하신 대로 하니라. 그 후에 상제님께서 만성리로부터 동곡에 임어하셔서 짚신은 원평장에 내다 팔게 하시고, 종이등에는 각각 '음양(陰陽)' 두 자를 쓰신 다음, 불사르시며 갑칠에게 "은행 두 개를 구하여 오라." 하시니라. 갑칠이 그 사촌형에게서 두 개를 구하여 올리니 종이등 사른 재 속에 넣으신 후에 그 재를 모아 냇물에 한 줌씩을 띄워 내리시며 " 하늘을 보라." 하시니라. 갑칠이 우러러보니 재가 물에 퍼져 흐르는 모양과 같이 구름이 피어나니라.
12
4월 그믐에 상제님께서 동곡에서 형렬을 거느리시고 만경 광찬의 집으로 행행하시니라. 이때 최면암(崔勉庵)이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마침 가뭄으로 인심이 흉흉하여 의병에 가입하는 자가 날로 늘어나 그 군세가 크게 떨치니라. 상제님께서 "칠순 노인의 위국충절은 가상하나 천시(天時)가 불리하니 무가내(無可奈)로다." 하시고, 세상 정세를 걱정하셔서 비를 많이 내리게 하시니 각자 농사터로 돌아가 인심이 안정되니라.
13
상제님께서 만경에서 익산 만성리로 거둥하시며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번에 면암의 동으로 인하여 천지신명이 크게 동하였으니 이는 그 혈성에 감동된 까닭이니라. 그러나 그 도수가 맞지 않으므로 한갓 생민만 죽음에 몰아넣을 따름이니 민망한 일이로다. 더구나 이번 공사로 가뭄피해를 물리치지 않았더라면 기근까지 겹쳐서 생민구활(生民救活)의 방책이 전무하리니 실로 양전(兩全)이 불능한 바라, 그 재질과 충절이 어찌 가석하지 않으리오? 그의 만사나 지어 두리라." 하시며 종도들에게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讀書崔益鉉 義氣束劒戟 十月對馬島 曳曳山河橇
독서최익현 의기속검극 시월대마도 예예산하교
14
동곡에 행재하실 때, 병선에게 콩 약간을 주시며 "삼략(三略) 수장을 일주야간 읽되 콩으로 그 읽은 횟수를 세어라." 하시니라. 병선이 벽을 향하여 앉아 읽으면서 콩으로 세다가 콩이 다하매 "다 읽었느냐?" 하고 하문하시므로 그 콩을 세어보니 꼭 천 개니라.
15
동곡 근처에 사는 김도일(金道一)이 상제님께 거만하게 대하더니, 복통으로 여러 날 고생하므로 상제님께서 임감(臨鑑)하시고 그 배꼽 위를 만져 주셨는데 그 후에 배꼽 위는 통증이 가셨으나 배꼽 아래는 여전하니라. 도일이 다시 와서 뵙고 만져 주시기를 간청하니 방에 눕히시고 문밖에 나가셨다가 들어오시며 꾸짖으시기를 "네가 어찌 감히 어른 앞에 누웠느냐?" 하시고 종도들에게 명하셔서 쫓아내시니라. 도일이 크게 성내어 돌아갔더니 병이 이내 나으므로 그 꾸짖으심이 곧 약이었음을 깨닫고 이로부터 마음을 고치니라.
16
도일이 다시 요통이 풀리지 아니하여 지팡이를 짚고 상제님께 와서 뵈니 "병 나은 뒤에도 아직 지팡이를 짚고 다님은 어인 일이뇨?" 하시니라. 도일이 "요통이 심하여 그러하나이다." 하고 아뢰니 광찬을 시키셔서 그 지팡이를 꺾으매 요통이 곧 나으니라. 또 도일에게 "서천에 붉은 구름이 떠 있는가 보라." 하시므로 나가 보고 "붉은 구름이 떠 있나이다." 하니 "금산(金山)을 도득(圖得)하기가 어렵도다." 하시니라.
17
형렬이 다리가 아파서 식음을 전폐하고 오한두통 하는데, 상제님께서 "주역 64괘명을 암송하라." 하시므로 그대로 하니 곧 나으니라. 형렬이 그 까닭을 여쭈니 "팔괘 가운데 음양오행의 이치가 있고, 약 또한 음양오행의 기운에 응한 연고니라." 하시니라.
18
5월에 상제님께서 광찬을 거느리시고 임피 이봉현(李鳳鉉)의 집에 임어하시니 서로 초면이시나 광찬은 봉현과 매우 친한 사이니라. 이때 봉현은 습종으로 보행을 못 하던 중에 반가이 맞아 술과 안주를 대접하면서, 평소에 의관을 정제하고 말과 마부를 갖추어 점잖게 출입하던 광찬이 이날은 동저고리 행색으로 같은 행색의 손님과 동행했을뿐더러, 손님이 광찬보다 연하임에도 존대함을 이상하게 여겼더니 그 손님이 바로 상제님이시니라. 상제님께서 봉현에게 술을 권하셨으나 병을 빙자하고 받지 아니하니 "그 병을 낫게 하리니 염려 말고 받으라." 하시고, 광찬도 또한 권하므로 봉현이 드디어 술을 받아 마시니라. 술을 마신 후에 상제님께서 "다리를 냉수에 씻으라." 하시므로 하명대로 하니 곧 나으니라.
19
봉현의 이웃사람 강화운(康華運)이 창증(脹症)이 심하여 죽기만 기다리더니, 그 부친이 상제님의 신성하심을 듣고 와서 문 앞에 부복하고 살려 주시기를 애걸하니라. 상제님께서 임감하시니 몸이 크게 부어 배는 독과 같고 다리는 기둥과 같으므로 말씀하시기를 "부골(富骨)로 생겼도다." 하시며 손가락으로 부은 배를 누르시니 한 자나 들어가니라. 이에 사물탕 네 첩을 지어 두 첩은 시렁에 얹어 두고, 두 첩은 문밖에 흩게 하신 다음,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환어하시니라. 이튿날 화운의 부친이 와서 기뻐하며 "병에 크게 차도가 있사오니, 한 번 더 보아주소서." 하므로 다시 임감하시니 부기가 거의 내려 있으니라. 상제님께서 "미역국에 쌀밥을 말아 먹이라." 하시고 환어하셨다가 이튿날 재차 임어하셔서 시렁에 얹었던 사물탕을 문밖에 흩으시고 활석(滑石) 한 냥쭝을 방 가운데 흩으시며, 화운에게 "이렇게 앉아서만 지낼 것이 아니라 걸어보라." 하시고 억지로 걷게 하시더니 이로부터 완쾌하니라. 7일 후에 상제님께서 군둔리로 출어하실 때 화운이 사례금으로 30냥을 올렸으나 받지 아니하시더니 굳이 올리므로 받으셔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음식을 사 주시니라.
20
어떤 사람의 아내가 폐병으로 위독해지자 상제님께 고쳐 주시기를 애걸하므로, 그 집에 임어하셔서 청홍색 염료를 물에 풀어 그 사람에게 손으로 젓게 하시니 그 손이 염색되니라. 상제님께서 "손을 씻지 말고 그대로 두면 그 염색이 빠질 때에 아내의 병도 나으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러하니라.
21
그 이웃 이명택(李明澤)이 안질로 고생하다가 상제님께 배알하고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므로 술을 마시게 하시고, 글 쓴 종이를 비벼서 만든 심지를 눈에 대시니 눈물이 흐르면서 곧 나으니라. 상제님께서 동쪽 하늘을 가리키시며 "우러러보라." 하시므로 모두 보니 대낮에 밝은 별이 나타나 있으니라. 말씀하시기를 "저 별의 정(精)이 눈에 옮았느니라." 하시니라.
22
봉현의 집에서 출어하실 때 말씀하시기를 "네 집에 폐를 많이 끼쳤으나 갚을 것이 없으니 너의 쇠약한 노모를 세상 떠날 때까지 건강하게 하여 주리라." 하시고 푸른 대 한 개를 가져오게 하셔서 발에 맞는 길이로 끊으신 다음, 글 쓴 종이로 감으셔서 문 앞에 가로 놓으시고 모래로 그 양쪽 끝을 덮으신 후에 "오늘 밤에 징조(徵兆)가 있으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날 밤 그곳으로부터 서기가 일어나 하늘에 뻗쳐 달빛과 같으니라. 이로부터 봉현의 노모가 80이 넘도록 병이 없이 건강하니라.
23
김낙범(金洛範)의 아들 석(碩)이 폐병으로 사경에 이르렀다 하므로, 상제님께서 김덕찬(金德贊)을 거느리시고 그 집에 임어하셔서 석을 사랑으로 업어 내어 엎드리게 하시고, 허리를 밟으시며 "이제부터 네 병이 나으리라." 하시고 일으켜 걷게 하신 다음, 닭 한 마리를 삶아 먹게 하시니 이로부터 완쾌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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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병을 치료하실 때에는 가끔 병자로 하여금 그 뱃속을 들여다보게 하시므로 들여다보면 환하게 보이는데 경락과 오장육부의 병난 곳을 낱낱이 가르쳐 주시니라.
25
이후에 군둔리를 거쳐 함열 회선동 보경의 집에 임어하셔서, 그에게 큰북을 대들보에 매달아 밤새도록 치게 하시며 '병자(丙子) 정축(丁丑)'을 연달아 외우게 하시고 "이 북소리가 멀리 서양에까지 울려 퍼지리라" 하시니라.
26
다시 보경 등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경상도 부산(釜山)에 행행하셔서 "이곳이 바로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며 세계의 관문(關門)이고, 후천선경의 기지가 될 곳이므로 소 백두(百頭)를 잡아 공사를 보아야 하리로되, 번거로우니 음동(音同)을 취하여 백우(白牛)로써 대신하리라." 하시며 흰 소 한 마리로써 치성을 올리게 하시고 공사를 행하시니라.
27
또 군산으로 행행하셔서 공사를 행하시며 글을 써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地有群倉地 使不天下虛 倭萬里 淸萬里 洋九萬里 彼天地虛 此天地盈 君起群倉 天下陷沒
지유군창지 사불천하허 왜만리 청만리 양구만리 피천지허 차천지영 군기군창 천하함몰
28
최면암이 순창에서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일심의 힘이 크니라. 같은 탄환 속에서 정시해(鄭時海)는 죽었으나 최면암은 살았으니, 이는 일심의 힘으로 탄환이 범하지 못함이니라. 일심을 가진 자는 한 손가락으로 퉁겨서 만 리 밖의 군함도 깨뜨리느니라." 하시니라.
29
상제님께서 김경학(金京學)의 집에 대학교 도수를 정하시고 "학교는 이 학교가 크니라. 이제는 해원시대이므로 천한 사람에게 도를 먼저 전하여야 하리니 박수 6명을 불러오라." 하시니라. 경학이 명을 받들고 불러오니 관건(冠巾)을 벗게 하신 다음, 각자의 앞에 청수를 놓게 하시고 거기에 사배를 시키신 후, 시천주 세 번을 외우게 하시고 주소 성명을 물으시며 "세상이 다 아는 이름이냐?" 하시고 "청수를 마시라. 이것이 곧 복수(福水)요, 복록(福祿)이니라." 하시니라.
30
하루는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귀신은 천리(天理)의 극(極)이니 공사를 행할 때는 반드시 귀신을 시켜 판단하노라." 하시고 글을 쓰셔서 형렬의 집 벽에 붙이시니 다음 장과 같으니라.
31
경학의 집에서 백지를 사지(四肢)처럼 오리셔서 벽에 붙이시고 물을 머금어 품으시니 빗방울처럼 떨어지니라. 이에 청수 한 동이를 길어 오게 하셔서 한 대접을 떠 진어하시다가 남기셔서 도로 동이에 부으시고, 종도들에게 그 동이 물을 한 대접씩 마시게 하시니라.
32
동곡에 행재하실 때 종도 9인을 시좌시키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도운(道運)을 전하리라." 하시고 갑칠에게 푸른 대 한 개를 임의로 잘라 오게 하셔서 그 절수를 세어 보시니 모두 11절이니라. 다시 명하셔서 1절을 끊어 내게 하시며 "이 10절 중 1절은 대두목(大頭目)이라, 내왕과 순회를 임의대로 할 것이요, 다음 9절은 도 받는 자니라. 하늘에 별이 몇 개나 나타났는가 세어 보라" 하시니라. 갑칠이 밖에 나가 우러러보니 구름이 하늘을 덮었는데 다만 하늘 복판이 열려서 별 아홉 개가 나타났으므로 그대로 복명하니 "이는 도 받는 자의 수효에 응함이니라." 하시고 또 "도운의 개시가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를 이루리라, 그러나 대두목은 오직 이 1절뿐이니라." 하시니라.
33
10월에 예수교당에 임어하셔서 모든 의식과 교의를 친감(親鑑)하신 다음,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별로 취할 것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34
하루는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문명을 크게 일으켜 천하사를 도모하려 함인데, 현재의 학교 교육은 학생으로 하여금 비열한 공리(功利)에 빠지게 하니, 그러므로 판밖에서 성도(成道)하게 하느니라." 하시니라.
35
상제님께서 함열에 즐겨 임어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곳은 만인함열(萬人咸悅)의 뜻을 취함이니라." 하시니라. 삼계공사를 행하시며 두루 순행하신 곳은 전북 7군이 위주니, 곧 전주 태인 정읍 고부 부안 순창 함열이니라.
36
정남기가 일진회원이 되어 상제님의 가입을 강제로 권고하며 회원 10여 인과 함께 상제님의 상투를 자르고자 하여도 베어지지 않더니, 손수 머리 한 갈래를 자르시며 "내 이것으로써 여러 사람을 해원시키노라." 하시니라. 다시 남기에게 탈회(脫會)를 권하시며 "네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나중에 후회막급(後悔莫及)하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 후에 패가망신하고 그 유족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니라.
37
이때 전주 문태윤(文泰潤)이 와서 뵈매, 상제님께서 그의 보자기를 보시고 "이방은 한적한 공부방이며 사방에 의병의 소요가 있어 정찰(偵察)이 심하므로 속 모르는 사람은 함부로 들이지 아니하느니 그 보자기를 풀어 보라. 그 속에 반드시 전쟁의 장본이 있으리라." 하시니 태윤이 두세 번 고사(固辭)하다가 부득이 끄르자, 그 숙부와 조카 사이의 재산 관계 송사문서가 들어 있으니라. 태윤이 여쭈기를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므로 선생님께 해결책을 여쭈러 왔사오나 부끄러워 차마 아뢰지 못하였나이다." 하매, "전쟁은 가족 전쟁이 크니 한집안 난리가 온 천하의 난리를 끌어내느니라.” 하시고 글을 써서 봉하여 주시며 "이 봉서를 조카의 집에 가서 소지하라." 하시므로 그대로 하니 과연 화해되니라.
38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풍운우로(風雲雨露) 상설뇌전(霜雪雷電)을 일으키기는 쉬우나, 오직 눈 내린 뒤에 곧 비를 내리고, 비 뒤에 곧 서리치게 하기는 천지조화로도 오히려 어려운 법이라, 내가 오늘 밤에 이와 같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고 글을 쓰셔서 불사르시니, 과연 눈이 내린 뒤에 비가 내리고 비가 개자 곧 서리치니라.
39
이달 그믐에 원일이 건재약방을 개설하고 약을 사러 공주 약령시장에 갈 때, 상제님께 뵙고 여쭈기를 "지금 길이 질어서 보행의 불편이 심하오니, 원하옵건대 공중(公衆)의 교통을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길을 얼게 하옵소서." 하니 하락하시고 "술을 가져오라." 하시므로 봉행하였더니 그날 밤 길이 얼어붙어 연말까지 녹지 아니하니라.
40
형렬의 집에 행재하실 때 하루는 해가 제비산 봉우리에 반쯤 떠오르는데, 상제님께서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난국에 처하여 어찌 정세(靖世)의 뜻을 품지 않으리오? 내 능히 일행(日行)도 멈추는 권능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시고 물 축인 담배 세 대를 갈아 피우시는 동안, 해가 산꼭대기를 솟아오르지 못하다가 담뱃대로 땅을 치시니 해가 문득 몇 길을 솟아오르니라.
41
김익찬(金益贊)을 거느리시고 전주 세천(細川)을 행행하실 때 왜인 사냥꾼이 기러기 떼가 앉은 곳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쏘려 하므로,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잔혹(殘酷)하도다, 군자가 차마 볼 일이 아니니라." 하시고 왼발로 땅을 한 번 구르시니 그 총이 쏘아지지 아니하니라. 사냥꾼이 이상히 여겨 총을 검사하는 사이 기러기 떼가 다 날아가므로 이에 걸음을 옮기시니 총이 그제야 발사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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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전주 이서면 불가지(佛可止) 김성국(金成國)의 집에 행재하실 때, 텃밭에 꿩이 많이 내리므로 성국이 덕찬과 함께 꿩을 잡으려고 홀치기를 많이 만들어 그 밭에 놓으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잡을 공부를 하나 나는 살릴 공부를 하느니라." 하시더니 이로부터 꿩은 많이 내렸으나, 홀치기에는 한 마리도 걸리지 아니하니라.
43
불가지로부터 전주로 행행하실 때 동남풍에 큰비가 몰려오므로 상제님께서 막대기로 길 가운데에 금을 그으시니, 빗줄기가 나뉘어서 한 갈래는 동쪽으로, 한 갈래는 서쪽으로 흩어져 내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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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종과 갑칠을 거느리시고 원평 앞 다리를 지나시며 왼발로 한 번 구르시고 길가에 서시니, 말 탄 사람 셋이 다리 건너편에서 오다가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못하니라. 마부가 힘들여 끌다가 한 사람이 걸어서 다리를 건너와 상제님께 절하고 애걸하므로 발걸음을 옮기시자 말도 비로소 움직이니라.
45
하루는 금산사에 행행하셔서 미륵금불과 기대(基臺)를 친감하시고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과연 증정일체(甑鼎一體)며 양산도(兩山道)로다." 하시고 화위전녀(化爲全女)와 주초위왕(走肖爲王)을 하교하시니라.
46
또 태인 도창현(道昌峴)을 순행하시다가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이곳이 군신봉조지국(群臣奉詔之局)이며 상유도창(上有道昌)하고 하유대각(下有大覺)하니 백의군(白衣君) 백의신(白衣臣)의 운회지지(運廻之地)니라." 하시고, 그 길가에 단장을 꽂아 놓으시며 "이 단장목은 인가목(人架木)이라. 이 나무가 살아서 후일 곤봉감이 되면 반드시 인명피해가 있으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 단장목이 살아서 자라나니라.
47
"초패왕이 25세에 도강이서(渡江而西)하였으면 성공하였을 것이나, 24세에 도강이서 하였으므로 성공하지 못하고 자문이사(自刎而死)하여 철천(徹天)의 포원(抱寃)을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48
김형렬이 여쭈기를 "옛날 진묵과 친하게 지내던 전주의 가난한 아전이 진묵에게 '가난을 벗어날 방법'을 묻자, 진묵이 '감옥의 간수가 되어라.' 하여 간수가 되었는데 이때 관내의 부호들이 많이 갇혔으므로 간수가 그들을 극진히 보살펴 주었더니, 그들이 감복하고 많은 물품으로 보답하여 가난을 면하였다 하옵고, 그 뒤에 진묵이 밤마다 북두칠성의 빛을 하나씩 가두어 7일 만에 모두 숨기니 조정에서 태사관(太史官)의 주청(奏請)으로 대사령을 내렸다 하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진실로 그러하였으랴? 나도 칠성을 숨겨서 세상 사람들이 아는가를 시험하리라." 하시고 그날 밤부터 한 달 동안 칠성을 모두 숨기셨으나 발견한 사람이 없으니라.
49
상제님께서 형렬의 집에 행재하실 때 형렬에게 "강감찬(姜邯贊)이 벼락불을 잇느라고 욕을 보는구나. 어디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고 좌우 어수로 무릎을 번갈아 치시며 "좋다 좋다" 하시니 제비봉에서 번개가 일어나 수리개봉에 떨어지고, 또 수리개봉에서 일어나 제비봉에 여러 번 떨어지니 "그만하면 쓰겠다." 하시고 어수를 멈추시자 번개도 그치니라. 이튿날 종도들이 제비봉과 수리개봉에 올라가 번개가 일어나고 떨어진 곳을 살펴보니 땅이 파이고 초목이 타 죽었으니라.
50
또 양지 20장으로 두 권의 책을 매게 하셔서 책장마다 어수로 먹도장을 찍으시며 "이것이 대보책(大寶冊)이며 마패(馬牌)니라." 하시고 책명으로 "의약복서종수지문(醫藥卜筮種數之文)"을 쓰셔서 "이 공사는 진시황의 해원 도수니라." 하시며 한 권은 신원일의 집 뒷산에, 한 권은 황응종의 집 뒤에 묻으시니라.
51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에는 108염주를 써 왔으나 후천에는 105염주를 써야 하리라." 하시니라.
52
하루는 형렬이 상제님께 배알하려고 객망리로 가다가 소퇴천 사람들과 만나기를 꺼려 그 길을 피하여 소로(小路)로 돌아가다가 하운동으로 행행하시는 상제님을 배알하게 되어 기뻐하며 "만일 이 길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배알하지 못하였겠나이다." 하니 "우리가 동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반드시 서로 만나리라. 네가 나를 좇음은 다만 마음을 취함이요, 금전과 권세를 취함이 아닌 연고니라." 하시고 "시속에 '망량(魍魎)을 사귐이 좋다' 함은 그 귀여워하는 물건을 구하여 주는 연고니라. 네가 만일 망량을 사귀려면 참망량을 사귈지니라." 하시니라.
53
또 하루는 문공신에게 시조 한 수를 외워 주시니 다음과 같으니라.
대천일해(大天一海)에 무근목(無根木)이 떠 있고
가지는 열두 가지 잎사귀는 삼백육십 입이 피었으니
뚜렷이 일월(日月)이 희도다.
구시월 세단풍(細丹楓) 바람잡아 탄금(彈琴)하니
슬프다! 저 새소리 귀촉도(歸蜀道) 불여귀(不如歸)를 일삼더라.
54
하루는 종도들이 개벽의 시기를 걱정하며 아뢰기를 "그때를 당하여 일꾼들이 적으면 어찌하오리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원평 장꾼도 없다더냐." 하시니라.